배 1척 영세 급유선사 “돌아가면 비용 2배… 지름길 포기못해”

조동주 기자 , 권기범 기자 , 박희제 기자

입력 2017-12-06 03:00 수정 2017-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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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낚싯배 참사 부른 급유선, 무리한 운항 실태

“그 길은 2시간이 더 걸려. 한 푼이 아쉬운데 누가 그리로 가냐고.”

급유선을 전문으로 운항하는 인천의 한 선사 대표 A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급유선 명진15호가 인천 옹진군 영흥도 동쪽의 좁은 수로(뱃길)를 운항한 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영흥도 남동쪽과 육지 사이를 지나는 영흥수도는 좁은 곳의 폭이 370m 정도인 ‘협수로(狹水路)’다. 한편으로 서해안 주요 항만을 오가는 최단 경로다. 만약 영흥도 북서쪽 큰 뱃길로 돌아가면 2시간이 더 걸린다. 운송비용은 2배 이상 늘어난다. 급유선이 영흥수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 해상 급유선은 육상 화물차 ‘판박이’

명진15호는 2015년 1월 전남 여수에서 건조돼 같은 해 2월 운항을 시작했다. 해상주유소인 D산업과 계약을 맺고 정박 중인 대형 외항선과 준설용 예인선, 바지선 등에 기름을 공급했다. 인천항에서 경기 평택항과 충남 대산항(서산시) 등을 오갈 때 늘 영흥수도를 이용했다. 사고 당시에도 인천항에서 경기 평택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천항 관제센터에 따르면 명진15호는 운항 시작 후 2년 10개월 동안 인천항을 490회 드나들었다. 한 달에 14.4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급유선 업체는 412곳. 운항 중인 급유선은 약 640척에 이른다. 급유선 운항 체계는 육상의 화물차와 비슷하다. 운송수단을 보유한 개인이 특정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거리를 수행하는 ‘지입차주’ 형식으로 운영된다. 자본금 1억 원에 100t 이상 급유선만 있으면 영업할 수 있다. 개인사업자 수준의 영세한 급유선사가 많다. 인천지역 급유선 업계에 따르면 명진15호를 소유한 M유조도 배 한 척이 유일한 자산이고 회사 사무실도 대표 이모 씨의 자택과 같은 곳으로 알려졌다. 선원 5, 6명을 제외하면 직원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366t급 명진15호는 인천지역 급유선 30여 대 중 큰 축에 속한다.

급유선사의 수입은 운송 수수료다. 현재 L당 5, 6원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급유선 한 척을 운영하면 선원 인건비와 연료비, 보험료 등으로 매달 최소 4000만∼5000만 원씩 들어간다. 선원 여럿을 고용해야 하기에 인건비만 월 2000만 원이 넘고, 유류오염 손해보험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처음 급유선 구입 때 받은 대출금 상환도 부담이다. 보통 300t급 급유선 가격은 20억∼30억 원가량이다.

줄일 수 있는 건 운송비용밖에 없다. 결국 선박 운항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눈앞에 멀쩡한 길을 놔두고 돈이 두 배나 더 드는 길을 가라고 하면 배를 몰지 말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 “운송 수수료 현실화 시급”

해상 급유선 업체 대부분이 워낙 영세하다 보니 M유조 역시 이번 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당시 명진15호에 타고 있던 대표 이 씨는 현재 해경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측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M유조는 한국해운조합을 통해 가입한 선박보험을 토대로 사상자 측에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해운조합도 이 씨와의 접촉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오후 4시경 이 씨는 해운조합 측의 전화를 받고 “구두로 사고 접수를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운조합 관계자는 “사고 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달라고 수차례 전화했는데 그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수사가 마무리돼야 사상자 배상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급유선 업체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전보다 비용에 쫓기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운송 수수료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급유선 업계는 20년째 제자리걸음인 수수료 지급에 항의해 지난해 10월 대기업 정유사를 상대로 동맹휴업을 벌였다. 그 결과 수수료를 L당 평균 4원에서 5, 6원으로 40%가량 1차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현재 급유선 업계는 내년 1월과 7월, 2019년 1월 단계적인 운송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는 연속 인상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의 중재 아래 협의체가 구성된 상태다.

한국급유선선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해상 급유 체계에 문제가 너무 많다. 이대로라면 절대 글로벌 해양강국이 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구조적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부당행위가 없어지고 안전도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 / 영흥도=권기범 / 인천=박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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