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세진]벤처 육성 ‘대기업 역할론’ 왜 쉬쉬하나
정세진기자
입력 2017-11-30 03:00 수정 2017-11-30 03:00
정세진·산업부
28일 현 정부의 성장담론인 ‘혁신성장’을 둘러싼 의미 있는 행사가 잇따랐다. 중소벤처기업 관련 8개 협회 모임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는 이례적으로 민간 주도의 5년간 혁신성장 로드맵을 제시했다. 오후에는 대통령 주재로 혁신성장 토론회가 열렸다.이날 두 행사에서 혁신벤처의 창업과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벤처생태계에서의 대기업 역할에 대해서는 미묘한 입장차가 느껴졌다. 혁단협은 풍부한 자금과 기술을 갖춘 대기업이 국내 벤처생태계에 뛰어들어야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과 기술협력, 해외시장 개척이 활발해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대기업의 역할론에 대해서는 사실상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나 김 부총리가 벤처생태계 활성화에 대기업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대기업 역할론을 강조하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홍종학 장관 역시 취임사에서 “대기업이 혁신 중소벤처를 제대로 된 가격에 M&A하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모두 상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계는 현 정부와 여당이 혁신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가 대기업과 함께 설립한 창조경제센터를 비판해 왔다. 대기업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비판해온 정치세력이 지난 정부와 비슷한 정책을 펴는 것으로 비치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국내 스타트업(챗봇 기업 ‘플런티’)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해외 기업 위주로 M&A를 해 왔다. 혁신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국내기업 인수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완화와 서비스업 활성화, 대기업의 벤처생태계 참여가 혁신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이 모르지 않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도 한국이 위기에서 탈출할 시간이 1∼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전 세계는 혁신기업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이념에 매몰된 정책 차별화에 고민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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