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덮친 공기관 채용비리 수사… 이광구 우리은행장 “책임지고 사퇴”

강유현기자 , 송충현기자 , 구특교기자

입력 2017-11-03 03:00 수정 2017-1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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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들어 은행장 첫 중도퇴진… 일각 “친박 성향 이광구 흔들기”
지주사 전환 등 당면과제 보류될듯


이광구 우리은행장(사진)이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민영화 이후 연임에 성공해 올해 3월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지 7개월여 만이다. 이번 정부 들어 시중은행장이 중도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행장은 2일 전체 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지난해 신입 행원 채용 논란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과 고객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차기 행장이 결정될 때까지만 행장 직무를 수행한다.

이 행장은 채용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공채에서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 거래처 등의 청탁을 받아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검찰청은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체 점검 보고서를 서울북부지검에 넘기고 수사를 지시했다. 최근 우리은행은 채용 비리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은 남기명 국내부문장 등 3명을 직위 해제했다. 하지만 이는 이 행장의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행장의 사퇴에는 채용 비리 의혹 외에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행장은 2014년 말 취임 당시 서강대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금회’ 일원으로 알려져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분류됐다.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사찰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친박 꼬리표는 뗐지만 곧이어 채용 비리가 터졌다. 케이뱅크 인가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나왔다.

1998년 상업·한일은행 합병 이후 끊임없이 문제가 된 행내 계파 갈등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일은행 출신 직원이 상업은행 출신인 이 행장을 끌어내리려고 내부 인사 자료를 유출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이순우, 이광구 등 상업은행 출신 행장이 잇따라 나오면서 한일은행 출신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채용 비리에 대해 진상 규명과 전수 조사를 지시하는 등 현 정부의 강경 기조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에서 시작된 금융권 채용 비리 조사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압수수색 등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가까운 시일 내에 후임 은행장 선임 시기와 절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손태승 글로벌부문장, 이동건 전 영업지원그룹장, 김승규 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내부 혁신을 위해 제3의 외부인이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주사 전환 및 예금보험공사의 잔여 지분(18.78%) 매각 등 우리은행의 당면 과제들은 일단 전면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강유현 yhkang@donga.com·송충현·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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