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탑… 대나무 통로… 12개 정자, 건축-미술 ‘드림팀’이 꿈꾸는 DMZ

김선미기자

입력 2017-10-26 03:00 수정 2017-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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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최재은 프로젝트에 세계 예술가 아이디어 속속 보태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대지를 꿈꾸며’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전문가들이 웃고 있다. 뒤쪽 화면에는 이들이 구상한 DMZ 프로젝트 맵이 띄워져 있다. 왼쪽부터 앨런 와이즈먼 전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 설치미술가 최재은, 건축가 조민석.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의 DMZ라고 부르는 비무장지대는 길이 241km에 폭 4km 구역으로, 1953년 9월 6일부터 사실상 인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없어지자, 한때 동족이 원수가 돼 싸우던 지옥은 오갈 데 없던 생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앨런 와이즈먼 전 미국 애리조나대 국제저널리즘 교수가 저서 ‘인간 없는 세상’에서 한국 DMZ에 대해 썼던 대목이다. 이렇게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DMZ가 역설적으로 생태계 보존지역이 됐다는 것에 착안해 갈등과 분단을 생명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개된 ‘대지를 꿈꾸며’다.

설치미술가 최재은이 2014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DMZ에 남북을 연결하는 20km 길이의 공중 정원과 가교를 짓자는 게 요지다. 이 꿈처럼 들리는 얘기에 공감하여 세계적 전문가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보태고 있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덴마크 디자이너 올라푸르 엘리아손, 인도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뭄바이, 미술가 이우환과 이불, 뇌 과학자 정재승, 건축가 승효상과 조민석 등이다. 와이즈먼 교수도 이날 발표회에 참석해 DMZ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지를 꿈꾸며’는 강원 철원군 DMZ 안 평강고원을 장소로 택했다.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이 있던 곳이자 미래엔 서울 용산과 북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각 예술가가 디자인한 정자와 탑을 곳곳에 세우고, 생명의 평화적 영속을 위한 종자은행과 지식은행을 두겠다는 것이다.

최재은이 구상한 DMZ 내 나무 탑인 ‘순환하는 나무’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반 시게루는 이 숲속에 대나무 통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모두 12개의 정자 중 5개는 이우환과 이불 등이 디자인했고 7개는 북한 작가들을 위해 비워 뒀다. 최 작가는 ‘순환하는 나무’라는 탑을 구상했다. 높이 30m, 폭 7.7m로 꽃의 대궁을 형상화한 나무 탑은 자연의 빛이 내부로 투과돼 꽃과 새와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DMZ에 뿌려 놓은 플라스틱 지뢰(M14)를 제거하는 데 498년이 걸린다”며 “플라스틱을 감지하는 인공지능 드론을 띄워 생태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민석과 뇌 과학자 정재승이 협업한 DMZ 내 ‘종자은행과 지식은행’도 흥미롭다. 노르웨이 등이 지하에 지식저장소를 짓고 있는 요즘, 우리는 기존에 있는 철원 제2땅굴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정보와 지식을 아날로그 형태로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저장해야 안전하다”며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을 DMZ 안에 담겠다는 구상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염원”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 없이 오로지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 작가는 “언젠가는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2015년 통일부에 이 기획을 제안했지만 답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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