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車업계, 3~4년만에 신차… 테슬라는 수시 업그레이드”

이방실기자

입력 2017-10-16 03:00 수정 2017-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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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경영석학 마이클 포터 하버드大 교수 인터뷰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디지털 혁신기의 궁극적 승자는 실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중 디지털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업체가 될 것”이라며 전통 제조기업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동아일보DB
“디지털 혁신의 핵심은 사고방식과 디자인 철학의 변화다. 상시적 제품 설계, 원격 업그레이드 등 ‘지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혁신의 정수다. 이런 노력을 가속화하면 전통 제조업체들도 얼마든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세계적 경영석학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동아일보와 채널A, 산업정책연구원(IPS)이 공동 주최한 ‘제4회 CSV 포터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9월 18일 방한했다. 그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과거에도 인터넷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디지털 혁신을 적극 추진하기만 한다면 순수 정보기술(IT) 기업보다 전통 제조기업이 궁극적 승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DBR 234호(10월 1일자)에 실린 포터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중 핵심을 요약한다.

―구글 같은 IT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등 디지털 혁명기를 맞아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IT 기업들이 전통 제조업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오늘날 전통 제조기업이 IT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분명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적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서비스를 재빨리 내놓는 IT 기업과 비교해 볼 때 제조기업의 대응 속도는 너무 느리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분석을 통해 데이터로부터 의미 있는 통찰을 이끌어 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데이터를 물리적 제품, 즉 ‘하드웨어’ 지식과 통합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순수 IT 기업보다 제품과 기초과학에 대한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통 제조기업이 최후의 승자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가령 자동차 전문가와 데이터 과학자 둘 중 일반적인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자동차에 특화된’ 데이터 분석을 잘할 수 있는 쪽은 전자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추구할 때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실물 제품을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아직도 대부분 업체들이 3, 4년에 한 번씩 신차 모델을 내놓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몇 년 단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성능과 기능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구제품을 신제품으로 대체하지 않고도 업그레이드라는 효율적 방식을 통해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 자동차 기업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사실 디지털의 핵심은 복잡한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디자인 철학과 훨씬 더 관련돼 있다. 몇 년 주기로 이따금씩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상시적 제품 설계, 원격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지속적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비단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모든 제조업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동시에 스피드와 생산성,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제품 설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보수·정비 작업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향후 제조업체들이 증강현실(AR)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AR 기술이 전통 제조업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나.

“AR 기술은 학습과 교습(learning and teaching)을 위한 강력한 도구다. 지금까지 근로자를 위한 정규 훈련 프로그램은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학교에서 몇 년간 정규 교육을 받아 놓고도 기업에 입사한 후 상당 시간 현장 트레이닝을 받아야 쓸 만한 근로자가 된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AR를 활용하면 복잡한 기계 작동법도 매우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그 어떤 기술보다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AR는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에 가상 세계를 투영하는 기술이다. 2차원에 갇혀 있던 디지털 정보를 3차원 현실 세계에 중첩시켜 준다. 이는 스마트 글라스 같은 기기를 통해 노동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기계 작동법이나 작업 지시 내용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제한된 훈련만 받고도 복잡한 작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고, 아무리 숙련도가 낮은 일꾼도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가며 쉽게 일할 수 있다. 한마디로 AR를 활용하면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와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건 일처리 속도가 배 이상 빨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는 어마어마한 개선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AR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가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AR를 구현하기엔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스마트 글라스가 이상적이지만 아직까지 기술적 한계가 큰 상황이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결국엔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전통 제조업체들이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선 조직 구조나 문화 측면에서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전통적 제조기업의 조직은 대개 연구개발(R&D), 제조, 물류, 영업, 마케팅, 서비스, 재무, IT 같은 기능별 부서들이 각각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기능 부서 간 협력과 조정은 이따금씩 드물게 발생한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을 위해선 기능 부서 간 상시적인 협력과 조정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구분돼 있던 기능 부서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 중첩될 필요가 있다는 걸 뜻한다. 당연히 조직 구조나 문화 측면에서 큰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구조와 문화를 갖고 있다.

“위계적 조직 구조는 비용 절감을 하는 데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리더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위계적 구조로도 충분히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같은 혜안을 가진 리더가 최고경영자(CEO)라면 위계적 조직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누구보다 신속하게 혁신을 추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잡스 같은 인물이 이끄는 기업은 없는 것 같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보통의 사람,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통념에 익숙한 사람이 리더라면 위계적 구조는 혁신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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