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두인의 양고기찜엔 평화의 제스처가 숨어있다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입력 2017-10-14 03:00 수정 2017-10-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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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이스라엘-요르단 음식 기행

[1]양고기를 자미드(건조발효 후 물에 녹인 염소요구르트)에 재워 흰쌀과 함께 쪄낸 ‘멘사프’. 베두인족의 환대문화 전통이 담긴 요르단의 국가적 음식이다. [2]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 [3]이집트 맥도널드의 ‘맥팔라펠’. [4]고츠위드더윈드의 염소치즈.
이스라엘과 요르단. 1994년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만 해도 숙적이었다. 요르단계곡(남행하며 사해로 흘러드는 요르단강 주변)에서 남북한처럼 군사대치상황이었다. 물론 지금도 국경은 무장군인이 지킨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긴장은 없다. 그런 화해의 선물일까. 화해 직후 요르단강 부근 요르단에서는 귀중한 유적이 발굴됐다. 예수의 침례소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의 공생활(公生活·복음전파 활동)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딘지는 몰랐는데 양측이 군사를 물린 최전방에 평화가 깃들면서 개시된 유적 발굴로 밝혀졌던 것. 그곳은 베다니(Bethany)로 4, 5세기에 침례소에 지은 기념교회다.

성서(구약 신약)시대에 요르단계곡은 역사의 중심. 하지만 지금은 동쪽의 요르단과 서쪽의 이스라엘로 나누는 국경. 그래서 성지도 갈렸다. 예루살렘 갈릴리호수 나자레드(성모마리아가 수태하고 어린 예수가 자란 곳) 베들레헴(예수 탄생지)은 이스라엘에, 이집트탈출 후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던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고 묻힌 느보산, 살로메의 춤으로 참수된 세례자 요한의 순교지 마케르스 여름궁전터 등은 요르단에 있다.

그래서 성지순례도 양국을 아우른다. 오늘 이야기는 이 두 나라 성지순례 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이다. 수천 년간 이웃하며 같은 물(요르단강)을 마시고 같은 사막에서 살아온 두 나라. 그럼에도 종교와 언어, 역사와 문화, 가치관은 다르다. 음식도 다르지 않다.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종교와 관련돼서는 철저하게 고유하다. 여행길에 먹게 될 일상적인 두 나라의 음식을 알아본다.


거리음식의 왕자 팔라펠과 샤와르마

지난달 이스라엘 여행길에 가장 즐겨 먹던 음식은 팔라펠(Falafel)이다. 이건 이집트콩(혹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경단튀김. 샐러드와 함께 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피타(Pita)라는 호떡모양 빵에 야채와 함께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그 팔라펠(샌드위치)엔 고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채식자에게 인기다. 이 팔라펠은 중동의 대표적인 거리음식이다. 우리에게도 점심식사로 훌륭하다. 팔라펠은 즉석요리다. 야채는 유리진열대에 구분해 두니 먹고 싶은 걸 알려주면 그걸 담아 준다. 가격은 12∼15셰켈(3890∼4860원).

팔라펠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음식(National Dish)이다. 미즈라시(Mizrashi) 유대인(성서시대부터 중동에서 살아온 유대인공동체 후손)이 줄곧 먹어와서다. 19세기말 시오니즘운동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찾은 이주유대인도 그걸 따랐으니 당연히 전통음식이 됐다. 하지만 이스라엘 고유음식은 아니다. 기원은 이집트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도 국가적 음식 대접을 받는다. 이집트 맥도널드가 ‘맥팔라펠(McFalafel)’이란 메뉴까지 개발해 팔았을 정도로 인기다. 팔라펠은 중동지역의 햄버거라 할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거리음식이자 간편식이다.


샤와르마, 케밥 그리고 꼬치구이

이스라엘에서 들른 팔라펠 가게에선 예외 없이 샤와르마(Shawarma)도 팔았다. 샤와르마가 팔라펠의 대안음식이다. 채식이 성에 차지 않은 이에게 팔라펠을 대신할 훌륭한 음식이어선데 그 샌드위치 외양은 똑같다. 다만 내용물이 다르다. 꼬챙이에 차곡차곡 꽂아 전기구이 통닭 굽듯 회전시키며 구워낸 고기(소, 닭, 양)다. 야채도 함께 넣으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중동햄버거다. 샤와르마는 팔라펠보다 5셰켈(1620원) 정도 비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샤와르마와 케밥(Kebab)은 하나였다. 샤와르마는 케밥의 아랍어 표기다. 요르단에서도 같다. 케밥은 우리에게도 중동음식 중 가장 잘 알려진 요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밥은 고기(주로 양고기)를 얇게 썰어 꼬챙이에 차곡차곡 쌓아 꽂은 뒤 뜨거운 발열판 앞에 수직으로 세워 회전시키며 가열해 굽는 것이다. 고기가 익으면 칼로 표면을 얇게 저민다. 그러면 고기가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듯 떨어진다. 케밥은 그걸 빵에 넣거나 얇게 구운 밀가루전병에 야채와 싸서 먹는데 샤와르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케밥을 대개는 터키음식으로 안다. 아니다. 수직꼬치에 꿰어 회전시켜 굽는 ‘도네르(Doner) 케밥’을 개발한 게 터키여서 그런 오해를 산 것이다. 도네르는 회전한다는 터키어 ‘돈멕’에서 왔다. 샤와르마도 같은 의미의 터키어 체비르메를 차용한 아랍어다. 케밥의 기원은 놀랍게도 아시아다. 서남아시아의 전통적 꼬치구이가 원전. 하지만 이름만큼은 페르시아에서 왔다. 기름 튀김(fry)을 뜻하는 ‘카바브(kabab)’가 어원. 수직회전식 도네르케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기꼬치를 아궁이불에 뉘어 굽는 시스(Shish)케밥이 대종이었다.


중동음식의 대표선수 후무스

후무스(Hummus)는 우리에게 낯설다. 반면 레반트(Levant·터키·이라크이남 아라비아사막이북 지중해동쪽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지역에선 우리의 김치처럼 일상적인 음식이다. 미국서도 인기다. 2009년에 국민의 17%가 일상식으로 즐겼을 정도로.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는데 대체 뭐기에 이렇듯 각광받는 것일까.

후무스는 병아리콩(chickpea)을 갈아 걸쭉하게 만든 소스다. 콩을 갈 때 참깨 간 것과 레몬즙, 올리브유, 마늘, 소금도 약간 넣는다. 식탁에 올릴 땐 덜어낸 후무스 표면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빨간 향신료(가루)를 뿌린다. 후무스는 중동에서 약방의 감초 격이다. 빵에 발라, 샐러드소스로 팔라펠과 샤와르마 샌드위치에도 빠지지 않는다. 레반트 지역의 일상적인 아침식단을 보자. 빵과 샐러드, 각종 생야채, 짭조름한 양·염소치즈와 요구르트가 대종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후무스가 놓인다. 전문식당에선 후무스 한 접시만 시켜 놓고 빵에 찍어 먹는 식객을 흔히 본다.

후무스는 아랍어로 병아리콩을 뜻한다. 수분을 제외한 고형성분(35%)의 대부분이 섬유질과 단백질(10%)인데다 비타민B는 풍부한 반면 칼로리(100g당 170Cal)는 적어 건강식으로 인기다. 콩은 단백질 섭취원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물. 후무스는 그걸 질리지 않고 맛있게 상식(常食)하게 한 지혜의 소산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카나페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했다. 모세는 그걸 믿고 이집트에서 노예가 된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 거길 찾아 앞장섰다. 그게 가나안, 서기70년 유대-로마전쟁 중 마사다 항쟁이 제압된 후 시작된 디아스포라(Diaspora·민족이 강제로 흩어지는 것)로 잃게 된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나자레드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페이스트리(Pastry·바삭하게 구운 빵이나 과자)를 발견했다. 카나페(Kanafeh)라는 스위츠(Sweets·달달한 먹을거리)다. 바닥에 순한 맛의 염소치즈를 깔아 구워낸 뒤엔 시럽과 꿀을 위에 바르고 피스타치오 조각을 뿌려 내는데 빵과 치즈, 단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그걸 만드는 알목타르(Al Mokhtar)는 50년 역사의 대물림 가게였다. 그리고 이 카나페와 아랍커피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커피에 섞인 카르다몸(Cardamom·백두구)이란 생강과의 향신료 덕분이었다. 이런 커피를 현지에선 ‘가화(gahwa)’라고 부른다. 커피잔도 다르다. 소주잔 모양이다.

나는 암만(요르단 수도)에서도 카나페 맛을 봤다. 거기선 ‘쿠나파(Kunafa)’라 불리는데 1951년 창업이후 대를 물려 다섯 지점을 둔 하비바(HABIBAH)란 상점이었다. 아랍은행 옆 골목의 본점에선 늘 십수 명이 거리에서 쿠나파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나페는 중동을 대표하는 단것이다.


베두인의 환대문화가 숨쉬는 멘사프 먹기

요르단의 음식과 문화에는 누구든 텐트를 찾아오는 이는 손님으로 융숭하게 대접하는 사막유목민 베두인족의 특별한 환대전통이 짙게 깔려 있다. 사진은 와디럼 사막에서 그런 베두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데저트캠프.
중동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양고기다. 멘사프는 그런 기대를 100% 충족시켜 줄 양고기스튜(찜)다. 이건 중동의 사막에서 텐트생활을 하는 유목민 베두인족의 환대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음식이다. 베두인의 환대문화는 특별하다. 누구든 텐트를 찾아오는 이는 손님으로 맞아 예외 없이 환대한다. 차나 커피 대접에 숙식까지 거리낌 없이 제공한다. 아델 아다일레 주한 요르단 대사는 “그가 설사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자일지라도 텐트에서만큼은 손님으로 깍듯이 대접한다”고 했다. 베두인족은 아라비아사막을 비롯해 중동전역의 사막에서 텐트생활을 하며 낙타나 염소, 양을 친다. 요르단은 중동에서도 베두인 전통이 문화적으로 성숙 발전한 나라.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중에도 베두인족이 많다.

이 요리는 양의 부드러운 어깨살을 자미드(Jameed)라는 소금 간 된 염소젖요구르트에 적셔 잣과 백미 올리브유를 넣고 쪄낸 것이다. 먹을 때는 양고기 즙과 염소젖요구르트의 맛이 밴 쌀밥 위에 고기를 얹어 오른손의 세 손가락을 이용해 먹는다. 이때 왼손은 뒷짐을 진다. 손님에게 적의가 없음을 보이는 베두인족의 제스처다. 멘사프는 슈락(Shrak)이라는 얇은 빵에 싸서도 먹는데 이 빵은 솥뚜껑 같은 금속판 위에서 금방 구워낸다. 멘사프는 결혼식이나 축제, 기쁜 날에 함께 나누는 요르단의 국가적 음식. 거기엔 갈등 해소와 평화 기원의 의미가 담겼다. 그건 부족 간 평화를 다지는 의식으로 이 요리를 함께 나누는 베두인 전통에서 와서다. 이걸 내는 암만 시내 타와힌 알-하와란 식당도 특별했다. 홀엔 시샤(Shisha)라는 담배 피우는 공간까지 따로 있었다.

요르단·이스라엘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식당 정보
 

이스라엘: ◇텔아비브 ▽하아킴(Ha‘achim) 레스토랑: 중심가의 젊은이 풍 캐주얼 레스토랑, 야외석도 있다. ▽블루루스터: 유럽스타일 레스토랑. www.thebluerooster.rest.co.il ◇갈릴리호반 ▽막달레나: 멕달(Megdal)의 막달라 센터 소재 고급식당. 04-673-0064 ◇나자레드 ▽알목타르(Al Mokhtar): 카나페를 내는 50년 역사의 스위츠 상점. ▽티슈린: 나자레드 최고의 중동음식레스토랑. www.tishreen.rest.co.il ◇요드팟(Yodfat) ▽고츠위드더윈드: 돌산 중턱(377m)의 염소치즈농장. 여주인이 직접 만드는 빵과 치즈, 샐러드로 음식도 낸다. 예약 필수. 050-532-7387 www.goatswiththewind.com ◇커피전문점 ▽카페 란트베어: 1919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업했지만 1933년 나치정권수립 직후 이스라엘 이주. 이스라엘 최초의 커피 로스팅 시설 가동. 전국 체인. www.landwer.co.il ◇관광정보 ▽정부관광청: www.goisrael.com

요르단: ◇암만 ▽하비바(Habibah): 쿠나파(카나페)를 내는 66년 역사의 스위츠 전문상점. 5개점 가운데 본점은 시내 아랍은행 옆. www.habibahsweets.com/en ▽타와힌 알-하와(Tawaheen Al-Hawa): 멘사프를 내는 아랍레스토랑. ◇와디럼 ▽캡틴스 데저트캠프: 와디럼의 사막 한가운데 바위산 밑 베두인캠프 체험숙소. www.captains-jo.com ◇관광정보 ▽정부관광청: www.visitjord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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