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골판지의 변신, 정말 종이 맞아?

김선미기자

입력 2017-10-10 03:00:00 수정 2017-10-1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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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뮤지엄 산’서 ‘종이 조형전―종이가 형태가 될 때’

강원 원주 뮤지엄 산(SAN)에서 전시 중인 종이 작품들. 종이학을 접었다 편 금박지 1만 장을 이어 붙인 박혜수의 ‘굿바이 투 러브Ⅰ―환상의 빛’(위 사진)과 구조물에 건 한지에 빛과 바람이 깃들게 한 김호득의 ‘겹과 사이’. 뮤지엄 산 제공
강원 원주 한솔오크밸리에 2013년 들어선 ‘뮤지엄 산(SAN)’은 구도(求道)의 미술관으로 통한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간결한 건물을 짓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빛과 공간의 예술가인 미국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곳. SAN은 공간(Space), 아트(Art), 자연(Natur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저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기에도 좋은 이곳에 ‘종이 조형전―종이가 형태가 될 때’가 지난달 22일 시작돼 다녀왔다. 종이 회사인 한솔제지가 모기업이라 국내 최초 종이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1997년 생긴 한솔종이박물관이 전신)도 갖추고 있는 뮤지엄 산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다양한 종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내년 3월 4일까지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종이는 과연 디지털 기기에 밀려 철 지난 존재일까. 최용준 뮤지엄 산 학예실장은 “종이의 다양한 소통 방법을 알리고 싶었는데, 정작 국내에 종이 작가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이는 접거나 오리는 작업 형태가 보존, 판매로 이어지기에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우리의 아름다운 종이로 형태를 만들어 냈을까.

전시는 공간, 소통, 사유와 물성의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기획됐다. 26명의 작가들이 한지, 양지, 골판지, 신문지 등 다양한 종이를 사용했다.

김호득의 ‘겹과 사이’는 가로 2m, 세로와 폭이 1m인 3개의 구조물에 한지 100장을 반으로 접어 촘촘히 걸었다. 마주하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면 한지에 시간대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한다. 천천히 음미하면 종이와 나, 작가와 종이, 그리고 작가와 내가 자연과 종이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최병소의 ‘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신문지를 소재로 삼았다. 인간 삶을 압축하고 있는 신문지를 까만 볼펜으로 색칠해 그 내용을 지우고 다시 연필로 덧칠했다. 작가는 ‘긋기와 지우기’를 반복함으로써 작업의 지속성과 무게를 시각화했다. 과연 이 종이는 과거에 신문지였나. 작가가 지운 우리의 일상은 어떤 의미였나. 석탄 또는 화석을 연상시키는 이 거친 까만 종이는 관람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박혜수의 ‘굿바이 투 러브Ⅰ―환상의 빛’은 처음엔 거대한 스케일에 놀랐고, 다음엔 그 의미에 공감했다. 벽에 걸린 대형 금색 종이는 종이학 1만 마리를 접었다 편 정사각형 종이 1만 장을 이어 붙인 것이다. 간절한 사랑을 담았던 종이학은 다시 종이로 해체됐을 때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접었던 자국이 뚜렷한 것처럼 사랑의 흔적은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설령 사라졌다 해도 사랑했던 기억은 이 금박지처럼 언젠가는 찬란하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단풍이 곱게 드는 이 계절, 종이를 그리고 사랑을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뮤지엄 산의 이 전시를 추천한다. 033-730-9000

원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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