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콘텐츠’ 판권까지 넘겨… 대학로 실신직전

김정은기자

입력 2017-09-18 03:00 수정 2017-09-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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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국내 판권 가진 ‘파파’… 뮤지컬 제작사에 20억대 팔기로
업계 “연극계 위기 보여주는 사건”


1998년 초연 이후 총 3만5000회 공연된 연극 ‘라이어’의 20주년 스페셜 공연. 대학로 대표 스테디셀러 작품인 라이어의 국내 판권이 이달 말 뮤지컬 제작회사 EMK에 팔릴 예정이다. 동아일보DB
소극장 연극의 중심지 대학로가 요즘 뒤숭숭하다. 최근 1년 새 내로라하는 대학로 연극 제작사 대표들이 수십억 원의 부채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급기야 1998년 국내 초연 이후 20년간 평균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해온 대학로 대표적인 흥행 연극인 ‘라이어’마저 뮤지컬 제작사에 판권이 팔리는 신세가 됐다.

뮤지컬 ‘엘리자벳’ ‘레베카’ ‘마타하리’를 제작한 EMK 엄홍현 대표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라이어의 국내 판권을 가진 파파프로덕션의 이현규 대표로부터 8개월 전 판권판매 계약 제안을 받고 현재 구두 합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판권료는 20억 원대다. 엄 대표는 “해외 오리지널 제작사 측으로부터 라이선스 계약을 넘겨받는 9월 말 최종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황에 허덕여 온 대학로 연극계는 관객 유인책으로 과도한 가격 할인 경쟁을 벌이며 티켓을 덤핑 판매해 왔다. 엄 대표는 “EMK가 연극 라이어를 제작하게 되면 공연을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한 뒤 현재 1만∼1만5000원대인 티켓 가격을 정상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침체된 대학로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연극열전’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홍기유 ‘적도’ 대표가 지난해 부채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지난달에는 ‘대학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최진 아시아컨텐츠브릿지 대표도 90억 원의 부채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수로 프로젝트’ 등 20여 편의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며 의욕적으로 창작활동을 해온 최 대표는 배우 및 스태프 출연금 미지급 사태 등에 시달리다 지난달 3일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3주 뒤 목숨을 끊었다.

공연 관계자들은 대학로 제작자들의 연쇄 부도 및 자살 사태에 이어 대학로 대표 킬러 콘텐츠인 ‘라이어’의 판권이 팔린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라이어’의 제작사인 파파프로덕션은 한때 대학로의 ‘현금 인출기’로 불릴 만큼 탄탄한 현금 회전력을 자랑해 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라이어’의 흥행 덕분이었다. 한때 라이어는 시리즈 1∼3편이 대학로를 중심으로 서울에서만 5개 전용 공연장에서 공연되며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올해 국내 공연 20주년을 맞아 ‘스페셜 라이어’란 제목으로 대학로는 물론이고 전국 8개 지역에서 공연 중이다.

파파프로덕션이 라이어 국내 판권을 뮤지컬 제작사에 넘긴 것은 30억∼40억 원대 규모의 부채 탓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기 위해 카페 운영 등 비전문 분야에 투자하면서 입은 손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한 공연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 메르스 파동, 탄핵 및 촛불정국 등 관객들의 극장행을 막는 대형 악재가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며 “대학로 제작사들 사이에서 그나마 파파프로덕션은 판권을 팔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 부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최진 대표 자살 이후 대학로는 집단적 우울증에 걸린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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