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IoT 실험실로” 산업체질 수술 나선 대만

한기재기자

입력 2017-09-18 03:00 수정 2017-09-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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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정부 ‘亞 실리콘밸리’ 목표… 하드웨어 중심 생태계 변화 시도
MS 등 글로벌 IT기업에 손짓


“대만을 사물인터넷(IoT) 실험실로 삼아 변화를 이끌어주세요.”

11일 타이베이(臺北)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의 한 회의실에 들어선 선룽진(沈榮津) 대만 경제부장(장관)은 미국 다국적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플랫폼 관계자들 앞에서 한껏 몸을 낮췄다. 이날 그는 혁신산업을 위해 필요한 IoT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라면 하드웨어 중심의 대만 산업을 기꺼이 수술대 위에 올리겠다며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변화를 향한 대만의 뜨거운 열망은 같은 날 타이베이시 세계무역센터(TWTC)에서 열린 세계정보기술회의(WCIT) 박람회에서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진행 중인 건축공사 현황과 그 안전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마트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타오위안(桃園)시에 곧 배치될 예정인 스마트로봇 안내원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발전시설과 교통량 관리 등 인프라 문제를 IoT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다루겠다며 경쟁적으로 청사진을 내놓았다.

지난해 5월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 출범 이후 중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지만 대만은 여전히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특히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선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 국가(2015년 기준 73%)다. 그럼에도 변신에 사활을 거는 것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의 기존 모델로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매서운 속도로 추격에 나서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다. 차이 총통이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인력 유치에 대해 “큰 위협이며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중국은 뒤처진 기술력을 단시간 내 따라잡기 위해 대만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지분 인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의 칭화유니그룹이 2년 전 대만의 반도체 패키징회사 파워텍의 지분 25%를 6억 달러에 매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불허돼 올해 초 거래가 무산된 것이 대표적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자국 안에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IoT 관련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5+2(IoT·스마트기기·녹색에너지 등) 산업혁신 계획’의 일부이기도 하다. 대만 정부는 또 올해 약 110억 대만달러(약 4000억 원)의 관련 예산을 집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대만이 타이베이에 유치하는 데 성공한 ‘MS IoT 혁신센터’의 예이쥔(葉怡君) 수석매니저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ICT와 관련된) 대만 기업들은 ‘생존 모드’에 돌입한 상태”라며 “당장은 괜찮아도 5∼10년 후엔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만의 혁신 기초체력이 최근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만은 4차 산업혁명 전환 준비도 지표로 통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네트워크준비지수(NRI)’에서 지난해 19위로 3년 연속 하락했다(2013년 10위, 2014년 14위, 2015년 18위). 우리나라는 NRI에서 지난해 13위로 평가돼 대만을 앞섰지만 ‘벤처캐피털 수’와 ‘지역 내 경쟁 강도’ 등에선 뒤졌다. 박한진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기술 혁신도 중요하지만 냉각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급선무라고 말하는 대만 기업인들이 많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타이베이=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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