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조선시대 여성 미라, 사망원인은 ‘성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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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9-13 03:00 수정 2017-09-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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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아산병원 공동연구팀
유전자 분석법으로 밝혀내
‘현대인의 질병’ 동맥경화로 숨져
동아시아 미라서 발견은 처음


플로스 원 논문 발췌
2010년 4월 경북 문경시 흥덕동 국군체육부대 아파트 건립공사 중 17세기 중반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묘가 발견됐다. 석회를 발라 공기 유입이 차단된 묘 안에는 표정까지 온전한 여인의 미라(사진)가 누워 있었다. 연구기관의 측정 결과 사망 당시 이 여성의 나이는 35∼50세로 추정됐다. 함께 묻힌 깃발에는 ‘아가씨(낭·娘)’란 글자가 선명했다. 미혼이란 뜻이었다. 당시 미라의 유품들을 전시한 박물관 측은 소실(첩)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양반가의 소실로 살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이는 이 여성의 사망원인이 400년 만에 밝혀졌다. 사인은 놀랍게도 과식과 운동 부족 탓에 현대인이 잘 걸린다는 동맥경화였다.

신동훈 서울대병원 해부학과 교수와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이 여성 미라의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12일 밝혔다. 여성은 이로 인한 심혈관계 질환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유럽인에게서 이런 유전자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동아시아인에게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2012년 유럽 공동연구팀은 5300년 된 미라 ‘아이스맨’에게서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화제가 됐다.

문경 미라 연구결과는 동아시아인들의 성인병이 반드시 서구적 생활습관에 따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동맥경화증은 혈관 내부에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이 쌓이며 혈관이 좁아지는 병으로 당뇨, 과도한 열량 섭취, 운동 부족, 복부비만 등 나쁜 음식·생활 습관 때문에 생기고 서구 문화가 도입된 현대 이래 급증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400년 전 조선시대 여성의 몸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연구진은 미라 내부 오염되지 않은 세포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단일염기다형성(SNP·염색체 내 개인마다 다른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인에게서 발견되는 동맥경화증 관련 SNP 7개가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진행된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는 여성의 관상동맥 혈관이 두꺼워진 모습과 대동맥 혈관이 석회화된 흔적도 발견됐다. 석회화는 혈관에 칼슘이 쌓여 나타나는데 동맥경화 환자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병을 일으킨 환경적 요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하지만 과거 박물관 측의 분석대로 여성이 양반가의 소실이었다면 평소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신체활동도 적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은주 교수는 “성인병이 현대인의 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 조상에게도 이런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요인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 영상의학적 소견이나 물리적 부검만으로 병리학적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연구에 유전자 분석법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온라인 국제학술지인 ‘플로스 원(PLOS ONE)’ 최근호에 게재됐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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