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정동]신체 나이와 경험 나이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입력 2017-08-03 03:00 수정 2017-08-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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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페이스북 애플 구글 창업자 몸은 20대, 경험나이는 40대… 韓美 성공적 창업도 40대가 보통
별다른 능력 없는 청년에게 창업 부추기는 건 무책임하다
산업계 중년고수들이 나서도록 국가 창업지원책 다시 짜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성공한 창업가가 되려면 몇 살에 시작하는 게 좋을까? 이 질문을 품고 창업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을 보면, 우선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청년 창업가들이 금방 떠오른다. 페이스북 창업자는 20세에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세, 애플은 21세, 구글은 25세, 트위터와 아마존은 각각 나이 30세일 때 창업했다.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타 기업 몇 개를 예로 들었지만 이들의 현재 시가총액을 합치면 2조9000억 달러가 넘는다. 작년 한국 전체 국민소득 1조4000억 달러의 두 배 이상이다. 맞다. 아이디어와 의지로 충만한 20대에 뭔가를 시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좀 다른 이야기도 있다. 몇 주 전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기업가정신 워크숍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07∼2014년 270만 건에 이르는 미국 창업기업 자료를 검토한 결과 평균 42세에 창업하고 그중에서도 성공적인 기업은 평균 45세에 창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미국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지만 청년과 중년 창업가의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은 신체 나이와 경험 나이를 구분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당시 신체 나이 20세였다고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10대에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판매했을 정도로 온갖 시행착오를 축적했다. 경험 나이로는 중년이었던 셈이다. 구글 창업자들도 게이츠 못지않은 20대 젊은이였지만 초절정 중년 고수이던 에릭 슈밋을 영입해 경험 나이를 보완하고 그 밑에서 경험을 더 쌓았다.

이처럼 자세히 뜯어보면 실리콘밸리의 놀라운 20대 청년 사업가들은 신체만 20대였을 뿐 경험 나이로는 이미 중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특이한 사례다. 창업 천국인 미국의 정확한 모습은 오히려 자기 분야에서 10년 이상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하면서 신체 나이와 경험 나이가 함께 깊어지고 농익은 석류가 마침내 터지듯 40대가 넘어 성공적 창업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창업 붐을 타고 기세 좋게 출발한 창업 기업들 중 지금껏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체로 창업가들이 경험 나이로 중년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결론은 분명하다. 창업은 신체 나이와 상관없이 경험 나이로 중년에 해야 성공한다.

경험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현재 우리의 청년 창업 붐을 바라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취업진로박람회장에 있던 한 청년은 별다른 특기가 없으니 창업을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청년들이 가장 희망하는 창업 업종이 요식업인데, 창업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으니 정부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특이한 실리콘밸리 청년 창업가들을 거론하며 청년들에게 그릇된 ‘창업 환상’을 심어주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오히려 축적이 되지 않는 생계형 창업으로 유도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대학 창업경진대회에서 기술 축적이 필요 없는, 가벼운 서비스 중심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것도 의지와 능력 부족이 아니라 경험 나이가 일천한 탓이다. 경험 나이로 중년이었던 게이츠를 신체 나이만 보고 청년 창업가의 성공 모델이라고 선전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산업계에도 경험 나이로 볼 때 축적이 상당한 중년 고수들이 많다. 이들이 창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들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뜀틀 역할도 이들이 창업한 기업들의 몫이다. 무엇보다 우선 경력자들이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무거운 창업이라는 돌을 굴릴 수 있도록 최초의 계기를 우리 사회가 같이 만들어줘야 한다.

국가적 지원책은 신체 나이 기준의 청년이 아니라 경험 나이 기준의 중년에게, 가벼운 창업이 아니라 무거운 창업을 진작하는 데 집중해야 옳다. 그래서 경험 축적에서 창업으로, 다시 청년 고용으로 되먹임 되는 선순환 고리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 선순환 생태계가 실리콘밸리의 본모습에 가장 가깝다.

마지막 주의 사항. 몸은 청년이되 경험이 중년인 청년 고수가 있듯이 그 반대도 있다. 도전의식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 매일 같은 방식으로만 일하다가 시간을 보낸 사람은 몸은 중년이되 도전적 시행착오 경험은 전무한 중년 하수다. 퇴적의 전형이다. 이 지경에 이르지 않으려면 경력자들도 매서운 기업가정신을 품고 새로운 시도와 경험으로 매순간 예리하게 벼려지는 고수의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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