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신화는 부동산투자 열풍이 함께 만든 결과”…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동아경제

입력 2017-07-29 13:00 수정 2017-07-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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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리단길’ 신화 만든 장진우 ㈜장진우 대표


장진우 ㈜장진우의 대표는 서울 이태원 뒷골목 경리단길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일명 ‘장진우 거리’로 통하는 경리단길에서만 콘셉트와 스타일이 다른 업장을 무려 20곳이나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어디든 그의 손길이 스치면 대박이 나고 특색 있는 거리로 탄생한다.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서울 망원동에서는 ‘망리단길’, 광주 동명동에서는 ‘동리단길’, 줄줄이 그의 거리로 이름 붙여지고 있다.
[지호영 기자]

과학과 편리가 질주하는 도심의 중심에는 언제나 ‘개발’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개발’이란 말의 사촌형제쯤 되는 ‘더 높게, 더 편리하게, 더 쾌적하게, 더 안전하게’ 이런 슬로건이 초대형 주상복합빌딩·초고층 아파트·최첨단 오피스 빌딩을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 터를 잡고 부자 되기를 꿈꾼다. 다 좋은데 어딘지 인간미가 부족하다. 익숙한 도시 개발의 프레임을 깨고 훈훈한 사람 냄새와 깔깔 웃음소리가 퍼져 나오는 곳이 있다. 그곳은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었다. 인적 드물고 허름한 뒷골목, 경리단길이었다. 7월 6일 그곳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장진우(32) ㈜장진우의 대표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진우 식당의 탄생

▼식당은 어떻게 시작했나.
“본래 상업사진가였다. 인물 전문이었고 연예인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강남에 있었고, 당연히 스튜디오가 있는 곳도 강남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술집이 활개 치는 거리 정서가 나랑 안 맞았다. 클라이언트와 단란주점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생각한 게 술집 가지 말고 ‘차라리 밥을 해주자’였다. 살던 집은 너무 초라해서 누구를 초대할 수 없었고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5~6평 테이블 하나 있는 미팅룸 겸 서재,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주방시설을 갖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감각을 발휘해 작아도 멋지게 꾸몄다. 그런 곳에서 밥을 해줬더니 오는 사람마다 맛있다고 난리였다. 식당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떤 음식을 해줬나.
“처음에는 꽁치김치찌개부터 시작해서 전어철에는 전어회무침, 멍게철에는 멍게회덮밥, 계절에 따라 재료 되는 대로, 여건에 따라 한식·일식·중식·이탈리아식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었다. 다들 뭘 해줘도 맛있다고 했다.”

▼요리는 어디에서 배웠나.
“나의 큰 스승은 ‘제이미 올리버’다. 네덜란드 여행 갔을 때 도시에 반해 잠시 머물렀는데, 영어를 잘 못해 메뉴판 읽기가 힘들었다.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가 없어 100편도 넘는 제이미 올리버의 비디오를 보며 열심히 따라 했다.”

▼방송 본다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만의 공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자는 공간·생각하는 공간·밥 먹는 공간이 하나로 되어 있거나 혹은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다. 그러면 창의적 생각이 잘 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뭐든 하게 된다. 머릿속 생각이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따른다. 공간이 무척 중요하다.”

▼언제부터 장진우 식당이 되었나.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픈한 후 1년 뒤부터였다. 함께 밥 먹은 지인들이 ‘진우 식당 가서 밥 먹자’는 말을 자주 했고, 자연스럽게 ‘장진우 식당’이 됐다. 그중에는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연예인을 불러들이면서 유명해졌다. 당시에는 공유, 공효진, 김민희, 씨엘, 크리스탈 등 빅 스타급 연예인이 매일 찾아왔다. 그때부터 일반인도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연예인들 덕분이었다.”


영감은 일상에서, 실행은 빠르게
재즈 비스트로 ‘그랑블루’. 〈킨포크〉 매거진에서 사람들이 창고 같은 곳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장진우 제공]

▼전문 요리사가 아닌데 힘들지 않았나.
“힘들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좋아하는 서핑이나 하며 히피처럼 살 거라고 떠났는데, 발견한 게 ‘문오리’다. 문오리는 문어와 오리를 함께 넣고 끓인 전골요리로 tvN ‘한식대첩’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김정호 명인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다. 그분과 친해져 매일 서핑하고 식당으로 가 요리를 배웠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문오리’를 차렸더니 이것도 역시 대박이 났다.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시기였다.”

아무것도 아닌 곳에 톱스타가 찾아오고, 대기업 회장, 재벌2세, 해외 유명인이 예약을 하고 밥을 먹고 여흥을 즐기는 곳.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겠다고 했는데도 아이디어는 죽지 않고 새 유행을 만들어내고, 열정은 뻗치고, 감각은 살아 있고, 젊고…. 급기야 간판 없는 작은 식당은 그랑블루, 문오리, 경성스테이크, 방범포차, 프랭크, 마틸다, 스핀들마켓, 이름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줄줄이 늘어나 ‘장진우 사단’ ‘장진우 거리’를 만들었다.

▼새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월세가 싸서 들어온 곳에 사람이 많이 오기 시작하니 그들에게 뭔가 다른 것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 장진우 식당 하나 보고 왔는데 밥만 먹고 가면 아쉽지 않나. 그래서 생각했던 거다. ‘빵도 사가면 좋지 않을까’ ‘케이크 살 때 꽃을 사면 좋지 않을까’ ‘그림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술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씩 늘어났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고, 영감은 어떻게 현실화되나.
“영감은 일상에서 찾고, 실행은 무척 빠르게 이루어진다. 아내가 샐러드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런데 샐러드집이 없잖아. 하나 만들게’ 이런 식이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나온 이야기가 곧바로 ‘방범포차’로 현실화되었다. 추진 속도가 빠르다.”

▼브랜딩 능력도 탁월하다. 노하우가 있나.
“사람들은 뭔가 잘 안 되면 빨리 접고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 ‘사이클(cycle)’로 접근한다. 지금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쳐줄 새 브랜드를 만든다. 그러면 두 개가 회전하면서 잘 안 되는 브랜드를 받쳐준다.”


직영 매출 100억, 건물주 투자 굿!
경리단길에 위치한 이탈리안 프렌치 스타일의 레스토랑 ‘MATHILDA(마틸다)’. [㈜장진우 제공]

▼그렇게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나.
“‘노하우’와 ‘경험’이다. ㈜장진우는 실무로 똘똘 뭉친 그룹이다. 단기간에 많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인테리어·디자인·서비스·회계, 장사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대기업 임원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이론이 실무를 이길 수 없다.”

▼현재 매출 규모는.
“직영 매출은 100억 원, 컨설팅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200억 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가 나는 이유는 계속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까진 공격적 투자, 내년부터는 유지 관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재벌 아들도 아닌데 20곳 보증금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겠나. 모두 다 벌어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하나씩 이루어가며 투자는 계속하고 그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사 잘되는데 대기업에서 인수, 투자 제안 같은 것은 없었나.
“100% ㈜장진우 지분이다. 요식업을 하면서 투자를 받는다는 게 사실 어렵다. 한때 몇몇 기업에서 그런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뒤로 대기업은 국내 브랜드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유지하기 힘든 업종이 요식업이다. 지금까지 7년을 유지해온 것도 신기할 정도다.”

▼요식업 투자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대부분 기업 투자자들의 목표는 빠른 기간 내 상장해 시세 차익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 요식업 상장은 치킨집이나 피자집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액투자자가 중요하다. 소액투자자들이 투자하면 짧은 기간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건물주가 투자하면 제일 좋다. 자기 건물에 괜찮은 가게를 입점시키면 건물의 가치도 오르고 영업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나.
“광주 동명동의 장진우 식당이 그렇다. 초기 투자를 건물주가 40%, 회사가 30%, 운영자가 30% 했다. 운영자는 장진우 창업스쿨의 제자다. 창업스쿨에서 가장 성실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그렇게 오픈한 동명동 장진우 식당은 요즘 최고로 히트를 치고 있다. 6000만 원씩 투자했는데, 두 달 만에 3000만 원씩 수익 배분이 이루어졌다. 투자자의 자본력,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의 열정, 장진우 식당의 노하우가 결합해 상생을 이룬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모델이 현재 네 곳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스러운 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1964년 런던 문제를 다룬 루스 글라스(Ruth Glass)에 의해 처음 명명됐다. 지금은 런던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로,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대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거리의 창시자 장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논제다.

▼업장을 얻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주변 부동산 디벨로퍼들의 영향이 컸다. 식당이 잘되니 임차한 건물값이 올랐고 그 건물이 아주 비싼 값에 팔렸다. 그러자 중개인들이 하나 같이 장진우가 들어와야 건물이 산다며 건물주들을 설득했다. 그 덕에 장소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들 장진우가 거리 신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거리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 부동산 투자 열풍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 열풍으로 디벨로퍼가 아니었는데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부동산 열풍이 경리단길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임차료가 많이 올랐다. 나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해서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하지만 우리도 건물주가 바뀌어 쫓겨나기도 했고 갑질을 당한 적도 있다. 지금은 회사 인지도가 높아져 함부로 쫓아낼 수 없겠지만 입장은 마찬가지다.”

▼자의든 타의든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가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방법을 찾고자 여러 시도를 했다. ‘스핀들마켓’이 그 실험 무대였다. 미국의 첼시마켓을 모티프로 한 스핀들마켓은 건물주가 100% 투자해서 모든 수익을 가져간 후에, 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젊은 사업자들한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물주와 세입자의 분쟁을 막고 과도한 임대료 인상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랏님도 해결 못한 부동산 정책을 한 젊은이의 탓으로 돌리는 이 사회가 개탄스럽기도 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외국에서도 존재하는 사회문제이고 자본주의가 낳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을 가지고 기자들은 매일 글을 쓴다. 문제만 키우고 대책 없는 기사가 때로는 투기를 더 조장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길, 세계인 거리로 만들어야”

▼뭐가 잘못된 건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과대 포장한 면이 있다. 손님이 많이 와서 매출이 오르면 당연히 월세는 오르는 게 맞고 건물가도 올라야 한다. 세금도 이전보다 더 많이 낸다. 거리의 가치가 오르면 건물주도 건물을 비싸게 구입한다. 오르기 전보다 10배 높게 산 건물주도 봤다. 그렇다고 그 건물주가 임대료를 10배 올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리단길 임대료 상승은 1층 상가에 국한된 문제다. 그 밖의 공간 시세는 이전과 비슷하고, 내가 아는 아티스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를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 상인이 사라지면 곧 그 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러면 사람이 오지 않고 건물의 가치도 떨어질 게 분명하다. 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안이 있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국내 인구가 줄어들어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인구 구조로는 전국의 모든 거리가 다 잘될 수 없다. 경리단길만 해도 최근 급부상한 망원동길에 많은 고객을 잃었다. 내수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다문화를 받아들이거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우리의 특색 있는 거리를 세계인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쿄도 내수 경제의 48%가 외국인 소비라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 그중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을 것이다. 과거 도쿄 여행하면 신주쿠, 시부야 정도였지만, 지금은 긴자, 아오야마, 아자부주반, 롯폰기 골목골목 깊숙이 다가가고 있지 않나. 한국의 거리도 우리만 아는 특별한 거리가 아니라 세계인의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이 벌어 제대로 돕고 싶다”

㈜장진우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장진우 식당’.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8인용 테이블 하나였던 공간이 연매출 100억 원, 전국 각지에 장진우 사단을 만들어내고 있다.[㈜장진우 제공]

젊고 보폭 넓은 행보 때문이었을까. 장 대표는 한때 정치인들에게 비례대표 영입 1순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뿐 아니라 소셜 다이닝, 장애인 및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청년 창업스쿨 등 사회공헌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인이 되고 싶진 않지만 나라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한다는 장 대표가 꿈꾸는 나라는 나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장진우 식당, 그랑블루, 문오리, 하는 족족 다 잘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거만해졌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잡지, 뉴스, 다큐멘터리, 모든 게 나를 집중했고 그럴수록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특별히 경영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세무·재무 지식도 없고, 자본도 없는데 주식회사를 만들고, 그러다 보니 7년 중 2년은 정말 힘들었다. 그때 역으로 누군가를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을 했나.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중증장애인 채용 카페 ‘꿈앤카페’를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이라는 장애인이 만든 커피 전문점 브랜드를 만들고, 인테리어·제품 디자인 등을 전면 개조했다. 공공기관의 빈 공간에 카페를 만들어주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다. 한국뇌성마비협회가 주관하는 ‘장애인들이 만드는 빵의 판매 라인 확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카페 ‘앵커드(Anchored)’는 장애인들이 만든 케이크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무료 컨설팅을 해준다. 궁극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쌀국수집 ‘청풍호치민’도 베트남 이주 여성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무료 컨설팅을 해준다. 그 밖에도 많다.”

▼결과는 어떠했나.
“착하게 살겠다고 했더니 더 힘들어졌다. 애초의 약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아이갓에브리씽’ 같은 경우 현재 16곳이 생겼고 매출도 좋지만 장애인들에게 해야 할 빵 주문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막상 해보니 사회공헌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 바람대로 장애인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16곳은 턱없이 부족하고 수백 곳은 생겨야 했다. 일은 일대로 열심히 했는데 보람차지 않았다. 사회공헌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사이 회사는 회사대로 힘들어졌다.”

▼그럼 이제 그만하는 건가.
“그래서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른 생각을 가진 기득권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많이 벌어서 돈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요식업 라이선스 등급제 도입해야”

▼창업스쿨은 어떤 곳인가.
“부모 도움 없이 자수성가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도 하는데, 너도 해라’라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사고방식을 바꾼다. 인테리어, 디자인, 네이밍, 브랜딩, 노무 이슈, 세무 이슈, 법률 이슈, CM, 마케팅, 창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 사업은 감각보다 숫자다. 감각에는 정답이 없지만 숫자에는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숫자로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고 평수가 크지 않아도 객단가를 계산할 수 있어 손해나지 않는 장사를 할 수 있다. 2년 동안 10기를 배출했고, 그들의 수업료를 모아 가장 성실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투자도 한다. 돈 잘 버는 대표 모델은 아니지만, 창업을 희망하는 후배들이나 대한민국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책을 바꾸고 싶다. 장사하는 사람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예를 들어 카페 하나를 차리려면 보통 1억 원씩 가맹비를 내야 한다. 그런 것보다 기술을 공짜로 배우고, 대신에 장애인이 만든 케이크와 저렴한 원두를 공급받는 식으로 누구 하나만 잘되는 구조가 아니라 모두가 도움을 받고 득이 되는 선순환 구조의 초석을 다지고 싶다.

또 요식업 라이선스 등급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현재는 요식업 허가가 너무 쉽다. 보건증과 6시간 동영상 교육만 받으면 된다. 그 밖의 것들은 아무것도 몰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랜차이즈가 성행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무리 잘해줘도 장사하는 사업주가 모르면 결국엔 망하게 되어 있다.

이는 청년의 문제뿐 아니라 중장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픈 전 상세히 교육하고 라이선스를 발급하면 폐업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 것을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현실화되도록 이끌고 싶다.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부디 나랏돈이 엉뚱하게 허비되지 않고 가치 있게 쓰였으면 좋겠다. 진정한 가치가 생기면 발전도 빠르다.”

송기자 기자|ehe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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