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한미 FTA 재협상, 구태에서 벗어나야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 2017-07-04 03:00 수정 2017-07-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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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확신적 보호무역자, 올가을쯤 통상공세 거세질 듯
두려워하거나 주눅 들 필요 없이 미-중-EU와의 협상 노하우 살려 ‘주고받는’ 협상 전략 짜놓아야
對美흑자 줄이라는 미 요구에 셰일가스 등 수입 늘리는 것도 현실적인 해결책 될 수 있어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무거운 발걸음으로 워싱턴에 간 문재인 대통령이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했다. 한미동맹 강화, 대북관계의 긴밀한 공조 등을 담은 공동성명은 그간 국민들이 우려하던 두 나라 사이의 먹구름을 씻어주었다. ‘뜨거운 감자’였던 통상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앞으로 구성될 한미 간 고위급 협의체에서 다루자고 하며 일단 잘 받아넘겼다. 어찌 보면 이번에 우리 대통령은 두 가지 면에서 운이 좋았다.

우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옆에 상무장관인 윌버 로스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통상의 한국 저격수는 미무역대표부(USTR)다. 상무부는 철강 반덤핑 관세를 발동하기도 하지만 미국 기업의 코리아 진출도 지원해야 하기에 한국 정부에 대해 크게 각을 세우길 꺼린다. 그래서 그런지 상무장관이 자동차, 철강 이슈를 들고나온 걸 보면 아마추어(?) 수준이다. 이 두 가지는 지난 20년간 두 나라 사이의 통상현안으로 1997년 슈퍼 301조 발동 등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뚜렷한 진전을 볼 수 없었던 색 바랜 이슈다.

다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날 때는 악수도 안 하며 딱딱하게 대했는데, 이상하게도 아시아 정상에 대해선 평소에 험하게 비난하다가도 정작 만나면 등을 두드리며 “잘해보자”라고 부드럽게 나온다. 지난 아베 신조 총리, 시진핑 주석 방미 때도 그랬고 이번 문 대통령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분위기가 좋았다고 방심해선 절대 안 된다. 미국에 가서 말하고 약속한 것은 성의 있게 이행해야 한다.

4월 플로리다 정상회담 이후 부드러워졌던 미중관계가 중국 단둥은행에 대한 제재 발표로 경색되었다.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미 기간에 이런 강경조치를 전격 발표한 것은 ‘워싱턴에 와서 약속한 것들은 성실히 이행하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신적 보호무역주의자’이다. 그는 중국, 한국같이 미국에 대해 흑자를 내는 나라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진짜 믿고 있다. 더욱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같은 무역협정이 미국의 적자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NAFTA를 재협상하며, 이번에 한미 FTA 재협상을 들고나온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5월에 임명되었고, 지금 멕시코와 NAFTA 재협상을 하느라 경황이 없어 아직 한미 통상은 손도 못 대고 있다. 하지만 금년 가을쯤 USTR가 진영을 갖추면 날카로운 통상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퇴색되지 않도록 정부는 지금부터 효율적인 대(對)트럼프 통상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 우선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재협상을 하면 뭔가 미국의 압력에 밀린다는 부담이 있지만 FTA 틀 속에서 주고받는(give & take) 협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협상을 거부하면 미국은 거칠게 나와 과거에 즐겨 하던 ‘한국 후려치기(Korea Bashing)’식 양자 통상협상을 하려 들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공세 앞에 방어적 통상 협상을 해야 하기에 이건 정말 부담스럽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한미 FTA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어차피 거센 통상의 파도는 몰아칠 것이다. 신설되는 통상교섭본부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FTA 조항 몇 개 고치자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 발효 후 5년간 두 배로 늘어난 대미 흑자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손잡고 연차적으로 대미 흑자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대미 수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번 공동성명에도 있듯이 확대지향적 무역수지 균형, 즉 우리의 대미 수입을 늘려 실현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미국으로부터 셰일가스 수입이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거칠더라도 미국과 통상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주눅들 필요 없다. 어차피 협상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3대 강국, 미국, 중국,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을 성사시킨 나라다. 그만큼 정부에 통상협상의 노하우가 쌓여 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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