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칡꽃, 술에 취한 조선을 깨우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7-07-03 03:00 수정 2017-07-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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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인 보라빛 칡꽃.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의술(醫術)’이란 단어에서 의(醫)자는 본래 술 주(酒)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글자다. 예부터 술은 몸의 온기를 북돋우는 기능이 있어 약으로 쓰여 왔는데 실제 효험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실록에는 성종 때 정난공신 홍윤성이 여름에 이질에 걸리자 소주(燒酒)를 조금씩 마시며 이질을 치료했다. 설사가 생기는 이질이 여름철 날것과 찬 것을 먹어 생긴 질환인 점을 감안하여 소주로 장(腸)의 온기를 높였다.

심지어 전염병인 홍역에도 소주를 쓴 기록이 있다. 정조가 쓴 ‘일성록’에는 의관들이 모여 홍역의 치료 경험에 대해 논의한 기록이 있는데, “올해 환자 중에는 오로지 소주만을 (치료제로) 썼는데도 살아난 사람이 많다”고 썼다.

반대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 이방우(李芳雨)는 날마다 소주를 마시다 병이 나 죽었다’며 소주 과음의 폐해를 지적했다. ‘지봉유설’에는 ‘소주는 오직 약으로만 쓰고 함부로 마시지는 않았다’며 옛 풍속을 해설한 뒤 예를 들어 소주의 독을 경고했다. ‘명종 때 교리 김치운은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다가 임금이 내린 자소주(紫燒酒)를 지나치게 마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궁 안에는 술을 빚는 집이 있는데 지붕을 덮은 기와가 쉽게 낡아 몇 해에 한 번씩 바꿔야 했다. 또한 그 지붕에는 까마귀나 참새 떼가 모여들지 않는다. 술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술은 먹을 때만 열이 날 뿐 이후엔 몸을 차게 한다. 얼어 죽은 이들 중 취객이 유독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방에선 과음한 이튿날 속이 불편한 이유를 속이 차가워지면서 위장에 물이 고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예부터 조상들이 해장하기 위해 칡즙을 즐겨 마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칡이 위장에 고인 차가운 물을 빠르게 흡수해 발산시키기 때문이다. 실제 칡의 줄기와 잎사귀가 뿜어내는 물의 양은 엄청나다. 한 시간에 두 양동이 정도의 물을 뿌리에서 끌어올려 잎사귀에서 증발시킬 정도다.

이런 칡의 특성은 인체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위장에서 물을 끌어올려 목 뒤의 뻣뻣함이나 몸의 열감을 식혀주고 풀어주며 술독으로 생긴 갈증을 해소한다. 한방에선 이런 치료원리를 이용해 열이 올라 잠 못 드는 불면증이나 입이 마르고 건조해지는 소갈증상 치료에도 칡을 즐겨 쓴다. 중약대사전엔 실제로 칡에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포함돼 있어 갱년기 장애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칡을 어떻게 먹는 게 술을 깨는 데 가장 좋을까. 먼저 ‘동의보감’에 나온 칡즙 용법을 보자. ‘칡뿌리를 짓찧어 즙을 낸 다음 1∼2홉을 마시면 술에서 깨어난다. 칡뿌리를 잘 찧어 물을 붓고 가라앉힌 가루를 받아 끓는 물에 넣으면 얼마 후에 풀빛이 나는데 이것을 꿀물에 타 먹으면 더 좋다.’

동의보감에도 칡꽃을 탕이나 차로 마시는 처방도 나온다. 탕으로는 ‘칡꽃(갈화)으로 만든 술 깨는 탕’이라는 뜻의 ‘갈화해성탕’이 있다. 칡꽃은 보라색으로 펴 땅 위로 흩뿌려지는 소박한 꽃으로, 여름 산 초입에 지금도 한창이다. 최고로 아름다운 술 깨는 처방은 이 칡꽃에 팥꽃을 같은 양으로 섞어 불기운에 말린 ‘쌍화산(雙花散)’이다. 동의보감은 쌍화산 4g 정도를 차로 우려 마시면 술에 취하지도 않고 술이 잘 깬다고 적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처방도 술을 이길 수는 없다. 무엇이든지 몸에 맞게 마시고 삼갈 따름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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