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지층 의식한 트럼프, 거친 ‘FTA 압박쇼’ 외교결례

문병기 기자 , 이건혁 기자 , 신나리 기자

입력 2017-07-03 03:00 수정 2017-07-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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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결산]“한미FTA 재협상” 노골적 공세, 왜

6월 30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승전-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만찬 회동 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방금 한국 대통령과 매우 좋은 회담을 마쳤다”며 “북한, 새로운 무역협정(new trade deal)을 포함해 많은 주제가 논의됐다”고 남기며 운을 띄운 뒤 마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한미 FTA 재협상을 압박했다.


○ ‘외교 결례’에도 노골적 공세 나선 트럼프 대통령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단독정상회담 직전 모두발언에선 노골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과 무역 재협상을 진행 중(We are renegotiating a trade deal right now)”이라며 “양쪽 모두에 동등하고 공정한 거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에 양국이 이미 합의한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 여과 없이 공개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 측 통역은 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발언을 제대로 통역하지 않았다. “양국이 공평하고 평등한 무역협상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원론적인 수준으로 요약해 전달하면서 “무역 재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핵심 대목을 누락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오늘 만남이 더 의미 있는 좋은 결실로 맺어지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인사말을 했다.

단독 회담 직후 일부 장관과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배석한 확대정상회담에선 미국 측의 파상 공세가 시작됐다. 비공개 확대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잠깐 언론을 놔둬도 되겠다. 무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지목해 “무역에 대해 몇 가지 말할 게 있는 것 같은데…”라고 공개 발언을 유도했다. 이에 로스 장관은 “예, 서(Yes, Sir)”라며 “한국과의 무역 불균형은 한미 FTA가 발효된 후 두 배가 됐다”며 포문을 열었다. 로스 장관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비관세 장벽 △중국산 덤핑 철강 재수출 △한국의 에너지 송유관 수출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미국 측의 입장을 담은 주장을 쏟아냈다. 이후 백악관 측은 한국 배석자들의 답변 기회를 제한한 상황에서 취재 기자들을 내보냈다. 미국에 유리한 주장만 공개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측 배석자들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내용이 많았다”며 “로스 장관 등의 주장에 대해 상세하게 반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에도 한미 FTA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새러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로버트 라이시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미 FTA) 재협상 및 개정 과정에 착수하는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FTA 재협상 굳히기에 “합의 외의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다음 날인 1일(현지 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언론발표 때) 아마 합의하지 못한 얘기를 별도로 하신 것”이라며 “공동성명 합의내용을 보라, 나머지는 합의 외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당시 우리 측의 차분한 대응도 상세히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미 상무부 자체 분석자료에 의하더라도 한미 FTA는 호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며 “비관세 장벽도 시정의 소지가 있다면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조사해보자고 역제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 한미 FTA 장기간 줄다리기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공세는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한미 FTA 재협상 카드를 밀어붙여 ‘아메리카 퍼스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러시아 게이트’와 함께 ‘오바마케어’ 대체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으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을 ‘외교적 성과’로 반전시키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이 한국과의 실제 협상을 염두에 둔 게 아닌, 미국 내 지지층을 향한 ‘국내용 호소’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따라 한미 양국은 이제 치열한 줄다리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파상 공세에도 미국이 단기간에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를 포함해 현재 발효 중인 한국의 15개 FTA 중 재협상을 한 사례는 없다. 실제 FTA 재협상을 시작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다만 미국이 재협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도 다양한 카드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문병기 weappon@donga.com / 이건혁·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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