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세 안올려… 면세자 축소도 중장기 과제로

박재명 기자 , 박희창 기자

입력 2017-06-27 03:00 수정 2017-06-2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시작부터 흔들리는 문재인 정부 세법개정
서민증세 논란에 기재부 긴급브리핑… 도수 높은 술에 높은 세금도 후퇴
‘증세=거위 깃털 뽑기’ 비유로 혼난… 박근혜 정부 실수 반복 피하려 선제 조치
6조 대선공약 재원 마련 어려워져



문재인 정부의 세법개정 추진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경유값 인상, 근로소득공제 축소 방안, 주세 개편 등 정부가 검토했던 내용들이 서민 증세라는 비판 여론에 맞닥뜨리자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제도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첫해(2013년) 세법개정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가 선제 조치를 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당시 정부는 의료-교육비 등의 근로자 세액공제를 추진하면서 증세를 ‘거위 깃털 뽑기’에 비유했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세법 개정 등으로 매년 6조3000억 원을 조달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공약 재원 마련은 예상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 서민 증세 논란 불거지자 “도입 안 해”

기재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올해 세법개정안에 경유세 인상안을 넣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은 “아직 의견수렴 공청회를 열지 않았지만 경유 세율 인상이 미세먼지 절감에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앞으로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경유세 인상 외에 면세 근로소득자 축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從量稅) 등 최근 도입 여부가 논란이 된 다른 세금 역시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세법개정 검토 내용에 대해 당국자가 나서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경유세 인상 방안은 다음 달 4일 공청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그만큼 증세 논란을 민감하게 판단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아주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청와대와 협의한 사실이 없다”며 서둘러 논란 진화에 나섰다.

기재부는 표면적으로 “도입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기재부 당국자는 “경유세 인상은 처음엔 미세먼지 줄이기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국내 미세먼지는 나라 밖에서 들어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형 화물차 등 경유차 상당수를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행한다는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 공약 이행 재원 마련은 “글쎄”

하지만 관가 안팎에서는 2013년 세법개정안 파문이 이번 빠른 대처의 ‘반면교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정부는 국내 전체 근로자 28%의 세금이 늘어나는 내용의 세액공제 개편을 발표했다. 납세자들이 반발하자 조원동 당시 대통령경제수석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낸 것”이라며 티 안 나게 세금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고 이것이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것처럼 논란을 키웠다. 경유세 인상, 종량세 도입 등 이번에 문제가 된 방안들이 전임 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이라 현 정부에서 추진할 이유가 크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증세 방안이 잇달아 철회되면서 정부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 이행을 위해 연평균 35조6000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상속·증여 신고세액 공제 축소 △초고소득 법인의 법인세 최저한세율 상향 등으로 증세 추진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공약 이행에 들어갈 재원을 마련하기는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마스터플랜을 내놓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박희창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