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안 적는 ‘표준 이력서’ 마련… 민간기업에도 영향 줄듯

유근형 기자 , 박재명 기자 , 이샘물 기자

입력 2017-06-23 03:00 수정 2017-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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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전면실시]문재인 대통령 강조한 대표 청년공약 “편견 없애면 비명문대 경쟁 이겨”
공무원 공채엔 이미 시행중이지만 공공기관-경력채용 새 지침 필요
문재인 대통령 “대기업 권유하고 싶다” 재계 “상당수 기업 이미 적용”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선서식에서 공정사회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표현했다. 실력과 인성만으로 평가받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정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첫 카드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하반기 도입’을 전격 지시했다.


○ 스펙 없는 이력서

문 대통령은 이날 “차별적 요인들을 일절 기재하지 않도록 해서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공무원과 공공부문은 우리 정부의 결정만으로 가능하니 그렇게 추진해 달라”고 지시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대표적인 청년 공약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공약집의 ‘스펙 없는 이력서’라는 부분에 관련 공약이 담겼다. 현 청와대 부대변인인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를 대선 캠프에 영입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고 부대변인은 2003년 KBS에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입사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KBS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전체의 70∼80%를 차지하던 명문대 출신이 30% 이하로 줄고, 지방대 출신은 10%에서 31%로 늘었다”며 “편견이 개입되는 학력과 스펙, 사진을 없애니 비명문대 출신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 표준이력서 가이드라인 제작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과 일부 공공기관에서 시행 중인 블라인드 채용이 하반기 공공부문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05년부터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에서는 직무와 관련이 없는 학력, 신체조건, 가족사항 등의 개인 신상정보를 이력서에 기재할 수 없다. 면접 때에도 채점자에게 응시자의 학력, 필기 및 서류 시험 성적, 나이 등을 제공하지 않는 블라인드 방식이 적용됐다.

다만 경력 채용에선 블라인드 방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고, 주요 경력이나 학력이 기재된 이력서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사혁신처는 ‘국가공무원 임용시험 및 실무수습 업무처리 지침’을 고쳐 경력 채용 시에도 학위, 자격증, 경력사항 등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 제출받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공공기관은 지난해까지 229개 기관이 도입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를 전체 기관(332개)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NCS는 현장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산업 부문 및 수준별로 체계화해 구직자의 불필요한 ‘스펙’ 나열을 피하는 제도다.

아울러 정부는 모든 국가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 시험의 입사지원서를 통일하고,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에서 블라인드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현재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더라도 기관마다 이력서에서 배제하는 항목이 다른 실정”이라며 “표준이력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 모든 공공부문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 대기업 탈(脫)스펙 전형 확산 전망

공공부문의 블라인드 채용 확대는 민간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부분의 대기업은 일부 직원을 블라인드 채용으로 뽑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5년부터 공개채용과는 별도로 지원자의 직무능력만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롯데 스펙(SPEC) 태클 오디션’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서류 전형에는 이름, 이메일, 주소, 연락처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만 적고, 기획제안서 등 직무 관련 서류만 요구하는 방식이다. KT는 2013년부터 학벌 등 차별적 요소를 빼고 직무 관련 역량만 약 5분간 자유롭게 발표하는 ‘스타 오디션’ 전형으로 약 10%를 채용하고 있다. SK텔레콤도 ‘바이킹 챌린지’라는 별도의 탈스펙 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기업들이 모든 채용 과정에서 학력과 출신지를 아예 묻지 않거나, 영어시험 등 소위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 탈스펙 전형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박재명·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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