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임대료 상한제의 유혹

이진 논설위원

입력 2017-06-16 03:00 수정 2017-06-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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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든 영화가 건축학개론이었다. 수지가 연기한 서연은 서울 정릉 친척집에 얹혀살다 강남 개포동 반지하방으로 이사한다. 서연이 15년 뒤 나타나 건축가가 된 주인공 승민에게 집을 지어 달라고 한 곳이 제주였다. 제주에는 연세(年貰)가 있다.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1년 단위 임대제도다. 제주에서는 이 연세를 목돈이 죽어 없어진다며 ‘죽어지는 세’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제도가 다른 한 사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결혼 뒤 6번 이사해 11년 만에 경기도에 작은 집을 마련했고 아직도 융자금을 갚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삼켰다”고 말할 정도니 세입자의 설움을 톡톡히 느꼈던 모양이다. 그가 추진하겠다는 정책이 ‘임대료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제’다. 두 제도는 전부터 민주당이 집세가 급등할 때면 꺼내든 카드였다.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동조하는 정책이다.

▷세입자는 을, 집주인은 갑이다. 김 후보자처럼 정부의 주택정책은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집주인이면서 동시에 세입자인 사람도 적지 않다. 자기 집을 세로 내주고 다른 곳에 세입자로 사는 집주인이 2010년 센서스(인구주택총조사)에서 268만 가구나 됐다. 전체 가구의 16%였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집주인 겸 세입자인 ‘두 얼굴의 국민’은 임대료 규제를 찬성할지, 아니면 반대할지 궁금하다.

▷미국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선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별로 올리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주인이 마음대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다. 우리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는 말을 제때 하지 않으면 기존 임대차계약이 2년 자동 연장된다고 정해 놓았다. 하지만 임대료 상한제 같은 규제는 유럽이나 미국이 세계대전 직후 주택 사정이 나빴을 때 도입했다가 없앤 과거의 유물(遺物)이다. 의도가 선한 정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을 김 후보자가 품었다면 빨리 깨어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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