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으면 타죽어 다시 모내기 준비”… 농심이 타들어간다

지명훈기자 , 이형주기자 , 이인모기자

입력 2017-05-30 03:00 수정 2017-10-1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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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봄 가뭄 극심… 농민들 발동동


“모를 심으면 뭘 해, 돌아서면 죽는걸…. 20일째 이 모양이여.”

말하는 내내 이종선 씨(69)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 사이의 천수만 B지구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규모는 약 15만 m². 극심한 가뭄 속에서 이 씨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80% 정도 모내기를 했다. 수량이 풍부한 담수호가 옆에 있는 걸 믿었다. 그러나 심은 모의 절반가량이 말라 죽었다. 가뭄으로 담수호의 염분이 높아진 탓이다. 이날 죽은 모 사이로 일부 살아남은 모가 보였지만 대부분 끝부분이 누렇게 변한 채 말라가고 있었다. 이 씨는 “모내기 기한인 다음 달 20일 전에 비가 내리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모내기를 시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한해(旱害)에 염해(鹽害)까지

근처 천수만 A지구의 염해도 심각하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간월호 저수율은 44%. 평년(82%)의 54% 수준이다. 농업기술원 조사 결과 현재 염도는 0.4% 이상으로 모내기 한계(0.25∼0.28%)를 훨씬 웃돌고 있다.

29일 충남도에 따르면 올 들어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143.4mm로 평년(236.6mm)의 60.2%에 불과하다. 특히 모내기 철인 5월에는 거의 강수가 없었다. 생활 및 공업용수를 담당하는 대청댐 보령댐 용담댐의 저수율은 각각 55.0%, 10.2%, 39.6%다. 보령댐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역대 최저다. 이근성 예산군 건설교통과 주무관은 “과거 가뭄 때에는 천수답 같은 곳에만 모내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농수로가 정비된 수리안전답까지 모두 영향을 받고 있다”며 “하천 바닥을 파도 거의 물이 나오지 않는 절망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려스러운 건 가뭄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가룡리 농민들은 아예 모내기를 하지 못했다. 농민 김석훈 씨(52)는 “32년간 농사를 지었지만 모를 심지도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영산강 물을 끌어와야 섬 지역 가뭄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지역의 올해 누적강수량은 1973년 관측 이래 최저다. 특히 강릉 지역은 조만간 큰비가 오지 않으면 사상 처음으로 수돗물 제한 급수를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농업용수는 22일부터 제한 공급이 시작됐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가뭄이 계속되면 6월부터 강화된 제한 급수 조치를 내려야 할 것 같다”며 “시민들은 물 아껴 쓰기 운동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수도권 젖줄인 소양강댐 저수율도 29일 현재 41.4%로 낮아지면서 상류는 바닥을 드러냈다. 최재영 인제군 소양호어업계장(61)은 “인제군 남면 일대 등 소양호 상류가 바짝 말라 5월 내내 조업을 하지 못해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보 개방해도 되나’ 늘어나는 걱정

정부는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을 우려해 다음 달 1일 4대강 6개 보 수문을 양수 제약수위까지만 열기로 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개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정도 방류로는 애초 의도했던 녹조 개선 효과도 미미할뿐더러 아까운 물만 내보내는 셈이라는 뜻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상황을 봐서 (영농기 중에도) 방류량을 조절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지금처럼 취수 부족에 대한 항의가 들어오면 다시 소극적으로 방류할 가능성이 높아 취수와 수질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장의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충남 공주시 송선동 공주보 주변 땅 1만8000m²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승주 씨(49)는 “보가 개방되면 금강 물을 공급받는 지역은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농사짓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도영 공주시 안전관리과장은 “1일 공주보를 부분 개방해 현재의 수위 8.75m를 8.55m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농업용수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보를 개방하면서 주변에 어떤 피해를 미칠지 관계기관이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주보 상류를 조정경기장으로 활용하는 공주시는 보 개방이 수상스포츠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공주시는 매년 이곳에서 조정경기를 개최한다. 공주시 관계자는 “조정경기는 수심이 3m 이상이면 가능한데 보를 전면 개방하고 가뭄이 극심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산=지명훈 mhjee@donga.com / 신안=이형주 / 강릉=이인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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