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캉드쉬 IMF 前총재 “IMF조치 가혹한 면 있었다… 한국, 과도한 시장 개입 여전”

동정민특파원 , 정임수기자

입력 2017-05-22 03:00 수정 2017-05-2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외환위기 20년… 장미셸 캉드쉬 IMF 前총재 인터뷰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년이 흘렀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나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 등은 여전히 미완(未完)의 구조개혁으로 남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구제금융 협상을 진두지휘한 장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84)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외환위기 때 취해진 일련의 개혁 조치들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금융시스템은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위기를 초래했던 일부 구조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7년 12월 3일 당시 캉드쉬 총재와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는 순간 많은 국민은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냈다. IMF가 뭔지도 몰랐던 한국인에게 이 세 글자는 경제위기의 대명사로 각인됐고,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과 뼈를 깎는 개혁을 요구했던 캉드쉬 전 총재는 ‘저승사자’로 통했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3년간 최장수 IMF 수장을 지낸 캉드쉬 전 총재는 현재 병상에 있어 외부 활동을 접고 있다. 병상에서도 그는 20년 전 위기의 순간을 생생히 전달하며 한국 경제에 대한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IMF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당시 한국에서 IMF가 ‘해고당했다(I am fired)’는 뜻으로 쓰였다는 걸 안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캉드쉬가 잡으러 온다’고 말할 정도로 IMF에 대한 한국인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금 모으기 운동’처럼 위기 극복과 국가 재건을 위해 혼연일체가 된 한국인의 애국심, 인내력, 자긍심이다.”

2008년 초 장롱 속 금붙이를 해외로 내다팔아 외화를 한 푼이라도 더 모으자는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그해 1분기(1∼3월) 243만 명이 165t의 금을 내놔 22억 달러 규모의 외화벌이를 했다.

―IMF의 조치가 가혹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살인적 고금리 정책, 재벌체제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개방 등을 요구했다. 또 김대중, 이회창 등 당시 대선 후보들에게까지 ‘각서’를 받았다.

“당시 긴박했던 협상 상황에서 IMF가 내건 조치가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 바닥난 외환보유액을 채우기 위해선 고금리 정책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IMF 조치의 근본적 목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다시 얻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중도에 IMF가 제시한 프로그램들을 수정했다면 글로벌 시장의 이해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나.

1997년 7월 태국 밧화 폭락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시아 전체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한국에 들어왔던 외화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국내 기업의 해외 돈줄이 막혔다. 외신은 그해 11월 초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20억 달러라고 보도했다.

“1997년 10월경 IMF는 한국 측에 외환보유액 수치 등 당시 재정 현황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IMF에 손 내밀기보다는 미국, 일본 등 우방국에 지원을 요청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결국 한국의 요청으로 11월 16일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해 당시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와 회동을 가졌고 그때서야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어 11월 23일 IMF 실무협의단이 방한해 한국이 12월 초 파산할 위험에 놓였다는 걸 알았다. IMF와 한국 정부는 구제금융 협상에 들어가 불과 열흘 만에 최종 합의를 이뤘다.”

―당시 개혁 조치들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비밀회동을 했을 때 그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120% 달성하겠다. IMF가 제시한 목표는 30년간 내가 싸워왔던 목표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한국 정부는 IMF가 제시한 개혁 조치들을 단계별로 잘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은 체질 개선을 이뤄냈고,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신흥국이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경제 개입, 재벌에 집중된 경제구조, 정치인과 재벌 간의 밀착 관계(정경유착) 등의 문제는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1997년에도 IMF가 지적했던 문제들인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전직 대통령도 삼성그룹 등과 여러 문제를 겪지 않았나.”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우선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거시경제 지표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투명한 경제’로 가야 한다. 기업 경영은 물론이고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투명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중소기업도 대기업처럼 연구개발(R&D), 직업훈련 등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는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험 요소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은 인구 고령화다. 급속한 고령화로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인구통계 관련 전문가가 아니어서 구체적 처방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한국도 일본처럼 고령층이 더 오래,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데….

“4차 산업혁명이 핵심인 인공지능(IA)과 로봇의 발전은 ‘일자리 창출’보다 ‘일자리 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괴적 변화가 위험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일자리의 평균 9∼10% 정도가 사라지겠지만 이는 평생직업훈련이나 연구개발 등을 통해 세계 각국이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등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분별력이 보호무역주의를 촉발한 분노를 넘어서고, 개방경제가 신(新)고립경제를 이길 것이라고 본다. 물론 각국 정부가 경제 개방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호무역처럼 기업 경제를 저해하는 정책은 유지될 수 없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정임수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