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 D-7, 뒷전으로 밀려난 미래·통합·정책·검증

동아일보

입력 2017-05-02 00:00 수정 2017-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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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제왕적 대통령의 탄핵으로 권위주의 앙시앵레짐에 마침표를 찍고 나라의 틀을 바꿔야 할 선거다. 그런데 어느 후보에게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먹고살 거리에 대한 고민, 미중(美中)의 각축에서 살아남을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머릿속에 없으니 과거만 놓고 싸우며 적폐·패권 청산을 외치는 소리만 높다. 한때 앞다퉈 ‘국민통합’을 외치던 소리는 사그라지고 선거구도는 다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에 갇히는 형국이다.

얼마 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 20대 청년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향에 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비단 이 청년만의 문제일까. 오늘도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취업 절벽에 막힌 청년들은 나라를 원망하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친다. 대선 후보들이 세금으로 늘리겠다는 일자리는 ‘땜질 일자리’일 뿐 진정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대한민국 미래의 먹거리, 즉 핵심 성장산업의 큰 그림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는 후보가 없다.

급변하는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입에 올리는 것은 적폐청산이요, 배제의 논리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청산’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고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가칭)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또 조사하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까지 뒤지겠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권을 5공 청산 하듯 청소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통합을 내걸고 있지만 ‘탄핵찬성세력’과 ‘계파패권세력’을 백안시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그나마 있던 정책 토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막말과 선동이 메우고 있다. 문 후보 측의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유세에서 “극우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경남도지사 퇴임 때 소금을 뿌린 좌파 시민단체를 향해 ‘도둑놈의 ××들’이라고 퍼부었다. 막말은 선거 유·불리를 떠나 정치세력의 수준이자 국격의 문제다.

유례없는 초단기 대선에서 더 중요성이 높아진 검증은 실종됐다. 문 후보의 아들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취업 의혹이 쏟아졌지만 문 후보 측은 ‘고마해라(그만해라)’라고 한 뒤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최소한의 해명도 하지 않았다. 정당한 검증 시도가 이렇게 무시된 사례가 없다.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대 임용 특혜도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이러니 ‘인민군 상좌 출신 반공포로 아들’(문재인)이니, ‘대선 후보 중 유일한 일제 부역자 자손’(안철수)이니 하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최악의 대선판이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12개나 만들고 국민 세금으로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6공화국까지 과거사 파헤치기에 매달려 결국 초래한 것은 국민 갈등과 분열이었다. 역대 정권이 전 정권과의 차별화와 과거 한풀이를 할 시간에 미래를 논의하고 한국이 앞으로 먹고살아야 할 산업전략을 고민했더라면 지금처럼 중진국의 함정에 갇혀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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