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 &]가명이 난무하는 골프장

안영식 전문기자

입력 2017-04-12 03:00 수정 2017-04-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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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골프대회 출전자들이 스타트 홀로 이동하기 직전, 카트 주변에 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안영식 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서 골프 치는 사람은 ‘죄인’이다. 애연가 골퍼라면? 한마디로 ‘중죄인’이다. 엄청난 세금과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과세는 가히 징벌적이다. 골프장 그린피의 약 40%, 담뱃값(4500원 기준)의 무려 73%가 세금이다. 소비자가 직접 내는 세금만, 그린피는 5종류(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체육진흥기금), 담배는 6종류(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교육세, 담배소비세, 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부담금)나 된다.

개별소비세는 이전엔 특별소비세로 불렸다. 말 그대로 특별한 재화(보석, 모피 등), 용역(룸살롱 영업 등), 특정한 장소(골프장, 카지노 등) 입장 행위에 부과되는 소비세다. 골프장은 아직도 룸살롱, 카지노와 같은 부류로 취급당하고 있다. 여행수지 적자의 주범도 해외골프투어 관광객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2016년 총 관중 수는 833만 명이었다. 골프장 총 내장객 수는 2013년 3000만 명을 돌파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야구는 대중스포츠로 불리고, 골프는 여전히 ‘사치성 스포츠’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

대중스포츠의 기준을 단순히 비용의 총액 측면에서만 보는 것은 억울한 구석이 있다. 좌석 하나를 차지하는 관중과 드넓은 코스와 각종 시설을 5시간 이상 사용하는 골퍼의 비용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건만.

게다가 한국 골프장은 태생적으로 고비용 구조다. 엄청난 부지 구입비와 막대한 토목 공사비가 투입된다. 똑같이 체육시설로 분류는 돼 있지만, 골프장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세율은 다른 종목보다 엄청 높다. 이는 고스란히 그린피에 전가되고 있다. ‘유리지갑’ 월급쟁이와 마찬가지로 골퍼와 애연가는 ‘봉’이다.

옛날엔 사이다, 콜라도 특별 과세 대상이었다. 그린피와 담배의 개별소비세도 세월이 해결해 줄까.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없애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국세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2016년 세수는 10조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도보다 5조 원가량 더 걷혔다. 올해는 13조 원이 예상된다고.

골프에 붙여진 ‘가진 자의 스포츠’라는 꼬리표도 쉽사리 떨어질 것 같지 않다.

차명 또는 가명을 쓰는 골퍼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름은 물론 성씨까지 바꾸는 경우도 많다. 조상이 노(怒)할 일이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이후 더욱 만연되고 있다면 섣부른 단정일까.

필자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 28일 이후 ‘n분의 1 골프’만 5차례 쳤다. 그런데 그중 4차례나 가명을 쓰는 동반자가 있었다. 예전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비율이다. 각자 비용을 분담하는 합법적인 라운드에도 가명을 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네임태그는 골프 기념품 중 정성이 담긴 품목에 속한다. 보통 2개(캐디백, 보스턴백)가 한 세트다. 이런 추세라면 1개는 가명으로 만들어야, ‘재치 있는’ 선물로 환영받을 것 같다.

청탁금지법 발효 이후 골프장 내장객 추이를 알아보기 위해, 골프장에 근무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식음료와 프로숍 매출은 줄었지만 내장객은 줄지 않았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날씨가 좋아 오히려 내장객이 조금 늘었다.”

국내 골프장 내장객의 30% 이상은 직간접적인 접대골프 관계자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내장객 수가 줄어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골프와 담배는 공통점이 있다. 중독성이 강하다. 이름을, 성(姓)을 바꿔서라도 필드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뜻하는 퍼슨(person)의 어원인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가 사용했던 가면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렇다. 인간은 가면을 쓴 존재다. 인격, 성품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쓴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에 능하다지만 정신건강 면에서 좋을 리 없다.

골프는 국내 전체 스포츠 산업의 38%인 15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닌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필요성 때문에 지난해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는 골프 대중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혹시 이와 관련된 공약을 내놓는 차기 대선 후보가 있을까. 업계에서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득표보다는 감표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 골프의 안타까운 현주소이자 자화상이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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