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주변엔 입사원서 냈다고 거짓말…난 ‘아가리 취준생’ 입니다”

이유종기자

입력 2017-04-10 17:13 수정 2017-04-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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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아가리 취준생’이다

#2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47개 대학과 대표적 고시촌인 노량진 등을 찾아가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함께 가져간 화이트보드에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날것’으로 담겼죠.
대부분 처음에는 각자의 목표와 희망을 말했지만
속내에는 짙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3
‘노력하면 된다.’
기성세대가 끌어안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죠.
하지만 이 믿음에 대한 청년들의 항변은 거칠었습니다.
일자리 부족의 근본 원인에 대한 현실적 진단은 외면한 채
‘너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건 해답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4
“친구들은 저를 ‘아가리 취준생’이라고 불러요.”
서울대 재학생 정유철(가명·26) 씨는 3일 첫 만남에서 뜻 모를 용어부터 꺼냈죠.
아가리(입의 비속어)에 취업준비생(취준생)이 합쳐진 신조어.
취업에 자포자기한 상태가 됐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나 지금 취업 준비 중이야” “○○그룹 원서 냈어”라며 거짓말을 하는 취준생을 뜻합니다.

#5
박도성(가명·28·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씨도 ‘아가리 취준생’.
그는 오후 1시 일어나 PC방에 가거나 술을 마시는 생활을 7개월째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도 ‘노오력’을 했습니다.
2011년 중국의 베이징외국어대, 2014년 필리핀에서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30여 곳에서 서류 통과조차 어려웠습니다.
외국어 점수 기한도 만료돼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 취업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6
김진선(가명·26·이화여대 국문과) 씨는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를 극복하려고
토익 만점 등 스펙 쌓기에 몰두했습니다. 10년 이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죠.
하지만 현재 그는 “난 이미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자조하죠.
2014년 기업 인턴 수십 곳에 지원했지만 서류 통과조차 불가능했습니다.
2015년 다행히 한 회사 인턴에 합격했지만 그것이 취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단순 업무에, 일하는 체계도 부족해 배울 게 없었죠.
이후에도 김 씨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며 입사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7
한국 청년 중 상당수는 취업 시도→좌절→니트 상태→재도전→좌절→니트 상태를 반복하다 최후의 보류인 ‘9급 공무원’에 도전하면서 ‘장기지속형 니트’가 됩니다.
‘니트’ :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최준석(가명·33·중앙대 사회학과 졸업) 씨는 300곳 넘게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진 뒤 자연스레 구직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결국 노량진을 찾았죠.
8일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서 4910명 선발에 역대 최대인 17만2747명이 몰렸습니다.

#8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취업 경쟁에 환멸을 느끼거나 사회 진출에 공포심을 가지는 현상을 ‘니트 증후군’으로 규정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원인입니다. 중소기업 입사 후 실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점프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정착돼야 합니다.”
-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원본 │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신슬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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