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병우, 청와대 요구 안따르는 공직자 ‘찍어내기 감찰’

허동준기자

입력 2017-03-29 03:00 수정 2017-03-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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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 투자한 CJ, 檢고발 지시받은 공정위 국장, 시정명령에 그치자 좌천뒤 감찰
직원 60명 3년치 근태자료 훑어 “병가 많아 감독 소홀” 사표 강요
특수본, 우병우 인사전횡 집중수사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를 마무리 지은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사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특히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실의 ‘찍어내기’ 감찰을 통해 공무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재중 전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56·현 한국소비자원 부원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우 전 수석의 인사 전횡에 대해 조사했다.


○ 청와대 지시 따르지 않자 ‘찍어내기’

특수본은 우 전 수석의 불법적인 인사 개입 행태가 김 전 국장이 공정위를 떠나게 된 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2014년 3월 CJ E&M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대기업의 영화산업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였다.

김 전 국장은 검찰에서 “청와대가 ‘CJ E&M을 조사한 뒤 고발조치하라’고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공정위 내부에서는 CJ E&M 조사가 명목상으로는 대기업 독점 규제 해소지만, 실제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 CJ가 일부 투자한 데 대한 복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공정위는 같은 해 12월 청와대의 요구와 달리 롯데시네마와 CJ CGV에 대해서만 검찰에 고발하고 CJ E&M에 대해서는 시정명령만 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조치는 청와대의 분노를 샀다. 김 전 국장은 1급 승진에서 탈락했고 2015년 1월 상대적으로 한직(閑職)으로 여겨지는 공정위 서울사무소장으로 좌천됐다.

청와대의 ‘복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정수석실은 서울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김 전 국장을 집중적으로 뒤졌다. 공정위 지방사무소를 대통령민정수석실이 직접 감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민정수석실 지시를 받은 공정위 감사담당관실은 서울사무소 직원들의 근태까지 조사했다. 직원 60여 명의 3년간 근태 자료를 분석한 끝에 감사담당관실은 “당뇨병으로 치료를 받던 A 사무관이 사전 신고 없이 병가를 낸 날이 많다”며 김 전 국장의 감독 책임을 문제 삼았다.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60)은 김 전 국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청와대가 ‘서울사무소 기강이 말이 아니다’라고 한다”며 “A 사무관은 물론 상급자인 당신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다그쳤다. 김 부위원장은 “국장 재교육을 받든지 사표를 내라”고 요구했다.

김 전 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억울하니) 차라리 징계위에 회부해 달라고 했지만 (김 부위원장이) ‘징계거리는 아닌데 청와대가 저러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사표를 낸 이유를 밝혔다.


○ 수사 시작되자 회유

김 부위원장과 신영선 당시 공정위 사무처장(56·현 부위원장)이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후 김 전 국장을 회유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두 사람은 김 전 국장이 올해 초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 통보를 받은 날 연달아 그에게 전화를 걸어 15분씩 통화했다. 김 전 국장은 이 같은 사실을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신 사무처장은 “당시 청와대가 개입한 게 아니다. 오해를 한 것 같다”며 김 전 국장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뒤이어 전화를 건 김 부위원장도 “청와대가 그런 것(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처럼 들렸다면 오해”라며 김 전 국장을 재차 설득하려 했다고 한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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