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하나의 벤처가 일자리 100만개 창출… 그런 시대가 4차 산업혁명의 진면목”

김창덕기자 , 서동일기자

입력 2017-03-28 03:00 수정 2017-03-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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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대학총장에 CEO까지 역임후
野人 되는 이상철 前 LGU+ 부회장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장관, 대학 총장, 기업 최고경영자를 모두 경험해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4차 산업혁명 같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 노동, 산업 정책 등이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LG유플러스 제공

유학을 떠난 지 11년 만에 귀국한 30대 중반의 공학도는 한국 군 통신지휘 체계의 토대를 만들었다. 40대 후반에 한국통신프리텔(KTF) 사장이 됐다. 50대엔 민영화된 KT의 첫 사장을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정보통신부 장관과 광운대 총장을 지냈다. 이력서 마지막 줄은 2010년 1월 출범한 통합 LG유플러스의 초대 최고경영자(CEO)다.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불렀던 그가 이제 진짜 ‘자유인’이 된다.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이어 이달 말 상근고문직에서도 물러나는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69) 얘기다. 21일 LG유플러스 용산사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마지막 외부 공식일정이었다.


#1. “4차 산업혁명 본질 아는 대선 주자 없어”

앞서 이 전 부회장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은 2014년 7월이었다. 당시 그는 인공지능(AI)에 말 그대로 꽂혀 있었다. 미국에서 주문을 받기 시작한 가정용 AI 로봇 ‘지보(JIBO)’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손수 찾아 보여줬다. LG유플러스는 그로부터 1년 뒤 이 로봇을 만든 벤처기업 지보에 200만 달러(약 22억4000만 원)를 투자했다.

이날도 이 전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얘기에 유독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99도까지 서서히 뜨거워지던 물이 100도에서 확 끓어버리는 것 같은 ‘빅뱅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그동안 축적돼 온 컴퓨터 기술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상상조차 못했던 다양한 사업 모델과 직업, 사회 현상이 쏟아져 나온다는 의미다. AI는 여기에 폭발력을 더하는 요소가 된다. 증기 기관, 전기, 인터넷 등 세기의 발명이 각각 1∼3차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는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로 이어졌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선 공약들은 그저 한 표라도 더 받겠다는 수사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공무원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은 나오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는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라는 두 키워드 모두 놓치기는 싫은데 연결시킬 논리는 개발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한 명의 인재, 하나의 벤처가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안겨주는 시대가 그가 그리는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이다. 그런 인재와 벤처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 산업, 노동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이 전 부회장의 조언이다.


#2. “아름다운 은퇴, 인생 끝까지 최선 다하는 것”

이 전 부회장은 지난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에 다녀왔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이끌어가는 글로벌 리더의 생각과 선도기업들의 전략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10곳의 해외 통신사업자와 만났다. 중국, 러시아, 폴란드, 태국, 터키, 브라질,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지역도 다양했다. 대부분 LG유플러스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롱텀에볼루션(LTE)의 성공 노하우를 물어왔다.

LG유플러스는 2011년 7월 LTE 통신망 주파수를 처음 송출했다. 이듬해 8월 LTE망을 이용한 음성통화 ‘VoLTE’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3년 4월 음성통화를 무제한 허용하는 LTE 전용 요금제도 내놨다. 모두 ‘세계 첫’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 전 부회장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게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비디오(동영상)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겁이 났다고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제 자신의 경험을 다른 나라와 나누려 한다. 기술 수출 가능성 때문이다.

우선 다음 달 태국 강연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중국의 한 통신사업자도 자국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강연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강연이 기술 수출로 이어진다면 친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거란 기대감도 내비쳤다. 국내에선 흔치 않은 전직 CEO의 ‘세일즈 외교’다.


#3. 청년에게 던진 키워드는 ‘책임’

대학 총장을 지낸 그이기에 미래 세대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 전 부회장이 청년들에게 던진 키워드는 ‘책임’이었다. 본인이 불행하다면, 본인에게는 자신을 불행에서 구해 낼 책임이 주어진다고 했다. 취업을 하기 힘들면 작은 기업에라도 들어가 본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식이다. “너 때문, 부모 때문, 정부 때문, 기업 때문”이라는 남 탓은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졸업 후 교사 자리를 얻지 못해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에서 4년간 관리직으로 일했다. 자신이 원치 않았던 그 직장에서 아인슈타인은 현대과학사의 물줄기를 단번에 바꾼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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