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초록섬, 발 디딘 순간 벗어날 수가 없다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입력 2017-03-18 03:00 수정 2017-03-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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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고갱이 사랑한 섬 ‘타히티’

공중에서 촬영한 모오레아 섬. 해안의 보초(산호띠)가 파도를 막아주어 해변 앞 라군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Raymond Sahuquet 촬영·타히티관광청 제공
내겐 늘 이런 질문이 온다. 가본 곳 중에 최고가 어디냐는. 대답은 늘 같다. 타히티(Tahiti)라고. 그런데 이 대답에 사람들 반응이 똑같다. 아! 고갱이 그림을 그린 그 섬? 그렇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그게 어딘지, 어떤 곳인지는 깜깜하다.

타히티는 남태평양에 있다. 더 정확히는 ‘프렌치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다. 이름에서 감지했겠지만 프랑스가 주권을 행사하는 폴리네시아(프랑스령 폴리네시아)다. 그건 1850년부터. 현재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라 불린다. 다섯 개의 군도(群島)로 이뤄졌고 섬은 총 118개. 섬과 바다로 이뤄진 영토는 400만 km²로 유럽연합(EU·433만 km²)에 육박한다. 하지만 118개 섬 면적(1045km²)은 고작해야 제주도의 58%. 위치는? 캘리포니아와 호주 사이. 적도에 의해 남북으로 나뉜 태평양에서 북쪽 하와이와 마주한다.

내겐 프렌치폴리네시아가 이 세상 마지막 여행지로 다가왔다. 이후엔 어떤 곳도 성에 차지 않아서다. 폴 고갱이 여길 찾은 것도, 여기서 생을 마감(1903년)한 것도 비슷하다. 빈센트 반 고흐와 결별 후 그는 꿈을 좇아 유랑했다. 원시의 순수가 피어나는 색(色)을 찾아. 그걸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제국 열강이 설치한 ‘식민지관’에서 조우한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장식에서다.

그런 그를 타히티로 이끈 건 제국주의다. 프랑스의 식민지여서 배가 오간 덕분. 그는 마르세유 항에서 타히티행 배에 올랐다. 그런 뒤 몇 달이 걸린 항행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 묘사된 그대로다. 그는 타히티 섬에 정착했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런 뒤 전시차 파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왔다. 타히티의 순수에 매료된 화가에게 문명의 파리는 숨쉬기를 허락지 않아서다.

하지만 그는 타히티 섬을 떠났다. 문명에 덜 오염된 곳을 찾아 더 멀리로. 쉰다섯 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던 히바오아 섬이다. 마르키즈 제도의 이 섬은 소시에테 제도의 타히티 섬에서 비행기로 근 네 시간이나 걸리는 바다 끝. 그는 거기 묻혔고 원주민은 그가 영면에 든 5월 8일을 지금도 기념한다.

내가 프렌치폴리네시아를 찾은 건 세 차례. 나 역시 순수한 자연에 매료돼서다. 그 풍광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와이 같은데 아름답기는 그 백 배쯤…. 나는 타히티에 첫발을 딛는 순간 알았다. 내가 여기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그건 청초한 이슬이 아침 햇살에 반짝대는 아침(8시 20분) 파페에테 파아아 국제공항에서다. 훤칠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아리따운 폴리네시아 처녀 둘이 트랩으로 걸어 내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미소로 맞으며 목에 레이(Lei·꽃목걸이)를 걸어주던 따뜻한 영접을 통해서다.

새벽에 따 즉석에서 실에 꿰어 만든 타히티 레이. 하얀 꽃은 타히티에 흔한 치자나무 것이다. 그걸 걸자 상큼한 향기에 열한 시간 밤샘 비행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티아레(Tiare)’라 불리는 치자꽃은 타히티의 상징이자 국화. 그래서 타히티 여행길엔 이 꽃이 떠나지 않는다. 국영항공사 에어타히티누이 항공기의 날개에, 항공사 로고에 든 여섯 잎 하얀 꽃이 그거다.

기내에서도 본다. 폴리네시안 여승무원은 그 꽃을 머리에 꽂고 서비스했다. 화장실에도 생화를 꽂는다. 잠든 승객 좌석에도 놓아준다. 그것도 피지 않은 꽃송이를. 서서히 피어나며 발산하는 향기를 맡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그 향기, 지금도 생생하다. 풋풋하고 수수하면서도 상큼 발랄 깜찍한 게 어떤 향보다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타히티와 치자꽃 향기는 늘 함께 생각난다. 내가 다시 타이티를 찾는다면 이 치자꽃 향기를 잊지 못해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건 폴리네시안에 대한 연민이다. 이들은 인류 중에 가장 용감한 민족이다. 카누 하나로 거친 태평양을 정복해서다.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지구상에 가장 널리 유포한 민족이 폴리네시안이라고. 아프리카 대륙을 나온 호모에렉투스(서서 걷는 사람)가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로 진화하며 동진하던 중 한 무리는 파푸아뉴기니를 경유해 바다로 진출했다. 그리고 기원전 남태평양 섬에 정착했다. 그들이 폴리네시안인데 이들의 거주 영역은 폴리네시안 삼각형(Polynesian Triangle)으로 상징된다. 타히티와 하와이, 뉴질랜드를 잇는 선으로 그 안의 쿡아일랜드 통가 사모아 라파누이(이스터 섬·칠레)가 모두 폴리네시안 섬이다.

하와이(Hawaii)란 지명도 폴리네시안 선조의 고향 하와이키(Hawaiki)에서 왔다. 900개의 모아이 상을 세운 라파누이에서도 ‘아후 아키비’만은 바다를 보고 있다. 민족이 기원한 하와이키를 향해서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900년경 당도)의 뿌리를 그린 영화 ‘웨일라이더(Whale Rider)’도 같다. 고래를 타고 온 조상의 고향이 하와이키 섬이다. 뉴질랜드는 영국식 이름이고 폴리네시안 이름은 ‘아오테아로아’(길게 구름이 드리워진 섬)다.

프렌치폴리네시아의 진정한 매력. 그건 하늘에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밀림에 덮인 초록 섬이 환초(環礁·고리 모양을 이룬 산호초)에 갇혀 옥빛의 라군(석호·바다호수)을 띠처럼 두른 모습이다. 짙푸른 코발트 빛 대양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이들 화산섬과 산호섬. 그런데 그 천국이 실제 발을 디디면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너무도 평범하다. 그건 자연. 사람의 때가 끼지 않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사람에겐 특별한 욕심이 있다. 귀한 것일수록 독점하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폴리네시아는 그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여행지다. 어딜 가도 오로지 나만이 그 자연을 소유하는 느낌을 가져서인데 리조트마저도 그렇다. 찾는 이도 넘쳐나지 않고 무례한 상업자본의 도발적 개발도 억제돼 왔다. 게다가 주 고객이 바캉스라는 여유 문화를 향유하는 프랑스인이고 그들의 취향에 맞춰 개발해 온 덕분이다.

그런 만큼 프렌치폴리네시아 여행은 그 방식도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의 숨결에 의식을 동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충실히 행사하는 것. 지구상에 이렇게 즐길 수 있을 곳, 여기뿐이지 않을까 싶다.

프렌치폴리네시아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항공로: 국영항공사 에어타히티누이가 나리타(도쿄·월토 출발)∼파아아(타히티·금일 출발)공항을 주 2회 운항. 편도 11시간 10분(도쿄→타히티) 소요. 에어타히티누이 한국지사에선 이 편에 편리하게 연계되는 인천 출발 편을 공동 운항 중. www.airtahitinui.com(한글)

타히티 관광청: 타히티 모오레아 등 프렌치폴리네시아의 섬과 관광에 대한 정보를 한글 홈페이지(www.tahiti-tourisme.kr)를 통해 제공 중. ‘두 개의 이야기, 하나의 마나’(www.embracedbymana.kr)엔 동영상이 있다. 문의 02-779-6172

여행상품: ‘히든 아일랜드’(4박 6일 일정)라는 브랜드로 각 여행사가 주로 허니문 상품으로 판매 중. 항공·숙박 예약으로 이뤄진다. 이곳 일정은 타히티 섬에서 하루 투어 후 섬으로 옮겨 리조트에서 휴식하며 액티비티(스노클링)를 즐기는 형태. 따라서 렌터카가 필요 없다. 타히티 섬에선 르트뤽(버스 개조 트럭·주간에만 운행)과 공영버스를 이용하는데 르트뤽은 손만 들면 선다.

리조트: 타히티와 모오레아 두 섬의 대표적인 리조트는 아래와 같다. ◇타히티 ▽르메르디앙 타히티 www.lemeridientahiti.com ▽인터콘티넨털 타히티 리조트 http://tahiti.intercontinental.com ▽마나바 스위트리조트 타히티 www.manava-suite-resort-tahiti.com ▽래디슨플라자리조트 타히티 www.radisson.com ▽소피텔 타히티 마에바 리조트 www.sofitel.com

◇모오레아 ▽소피텔 모오레아 이아 오라 비치 리조트 www.sofitel.com ▽모오레아 펄 리조트&스파 ▽인터콘티넨털 모오레아 리조트 http://moorea.intercontinental.com ▽힐턴 모오레아 라군 리조트 www3.hilt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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