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깨어난 류승범의 ‘수컷 본능’

손효림기자

입력 2017-02-21 03:00 수정 2017-02-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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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극 ‘남자충동’]

이혼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어머니(황영희)를 말리는 장정(류승범·오른쪽). 프로스랩 제공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사내가 있다. 가정과 조직을 지키는 방법은 폭력이라 굳게 믿고 실천하지만 그럴수록 가족과 부하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3월 26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남자충동’은 전남 목포시를 배경으로 주먹이 최고라 여기는 ‘수컷의 삶’을 차지게 풍자한 작품이다. 조광화 연출가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1997년 초연돼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주인공 이장정 역의 류승범은 단순하고 우악스러우면서도 천진한 면이 있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소화한다. 그가 연극무대에 선 것은 ‘비언소’ 이후 14년 만이다. 장정 역에는 박해수가 더블 캐스팅돼 선 굵은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전라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류승범은 노름으로 집을 저당 잡힌 아버지, 징글징글한 삶에 이혼하고 떠나버린 어머니 대신 존경받는 가장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정의 심정을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자신을 피하는 가족과 부하들을 보며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더 센 주먹이 필요하다고 비장하게 다짐하는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자폐아 여동생 달래에게 한없이 약해지는 그는 정이 뚝뚝 묻어나는 오라비 그 자체다. 때론 아이 같고 때론 ‘양아치’ 같은 표정을 자유자재로 짓는 류승범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그가 내뿜는 거칠고 펄떡이는 에너지는 극을 ‘웃프게’ 만드는 단단한 중심축이다.

장정의 부하들이 다리를 건들거리는 춤을 추며 남자라면 무릇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 부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경험을 하나씩 토해내는 대목은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아버지 역의 김뢰하, 어머니 역의 황영희 등 관록 있는 배우들도 무대를 꽉 채운다. 달래 역의 송상은이 들려주는 놀라울 정도로 맑고 고운 음색은 비정하고 탁한 폭력의 세계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라이브로 연주하는 베이스기타의 묵직하고 끈적끈적한 음색은 감정선을 배가시킨다. ★★★★(★5개 만점).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1관. 4만∼6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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