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특검 ‘인신 구속’ 여론재판 말고 정도로 가라
황호택 고문
입력 2017-02-15 03:00 수정 2017-02-15 03:00
‘정윤회 문건’ 축소 수사 손 못 댄 특검 스타급 기업인 구속에 매달려
영장심사도 재판 새로운 증거도 없는 재청구 기각하는 것이 당연
대통령 조사 끝나고 법정에서 진실 가려진 뒤에 구속 여부 결정이 정도
이번 특검 수사에서 가장 미흡한 대목은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의 축소 수사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찰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2014년 12월에 터져 나왔던 정윤회 문건만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최순실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재벌들의 등을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문건의 핵심인 국정 농단은 따져보지 않고 공무상 기밀누설로 사건을 축소했다.
이 사건 수사 후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이번 특검에서는 우 전 수석에게 제기된 진경준 검사장 승진 부실 검증 등에 대해서도 손도 대지 않았다. 수사 인력을 검찰에서 파견받는 특검의 구조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박영수 특검이 의지를 갖고 챙겼어야 하는 대목이다.
특검은 정작 국민이 궁금증을 느끼는 수사는 소홀히 해놓고 스타급 기업인의 구속에 매달리는 것 같다. 법조계에서는 “특수부 검사들은 일단 칼을 빼면 아버지라도 구속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조크가 있다. 여론의 조명이 집중된 사건에서 지명도가 높은 사람을 잡아넣어야 수사의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구속만능주의를 꼬집은 말이다.
법원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이유에는 “뇌물 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뇌물수수죄는 뇌물공여죄에 비해 형량이 무겁다. 뇌물을 받았다는 대통령은 조사도 안 한 채 뇌물을 주었다고 하는 기업인만 구속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그것도 권력의 강요에 의해 갖다 바친 돈인지, 대가를 바라고 부정청탁을 한 돈인지 법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대통령 조사가 마무리된 후에 삼성 총수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박근혜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헌재가 9일로 합의한 대면조사 일정을 흘렸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핑계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39권이 새로 나와 특검의 조사를 받으면 답변이 궁색해지고 헌재 심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 부회장은 불구속 기소를 하는 것이 순리다.
특검은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고, 청탁해야 할 주요 현안이 있었으니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을 입회시키고 재벌 회장들을 만나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이야기를 꺼내고 승마협회 지원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마당에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재 검찰이 새로운 증거라고 제시하는 것은 2016년 2월 박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독대하고 나서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내용에 관한 메모가 담겨 있는 안 전 수석의 수첩이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이 수첩의 임의제출에 동의하지 않아 증거능력에 하자가 있고, 과연 뇌물죄의 스모킹건이 될지도 미지수다.
전 국민의 눈이 집중된 사건에서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판단하는 것도 법관의 책무다. 그런 면에서 지난번에 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부장판사는 용기 있는 법관이다. 영장심사도 재판이다.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중대한 혐의 사실이 추가됐거나 명백한 증거가 보강되지 않았으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의 물결, 중국의 사드 철회 압박용 무역보복에다 소비냉각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택시기사들도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청년실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의 리더십은 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최대 기업 총수가 뇌물죄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면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성장률을 크게 떨어뜨릴 만한 악재다.
그렇다고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라고 하면 “재벌 총수는 구속도 못 하나”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특검이 여론재판을 유도하지 말고 정도로 가면서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진 뒤에 인신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차분함이 요구된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
영장심사도 재판 새로운 증거도 없는 재청구 기각하는 것이 당연
대통령 조사 끝나고 법정에서 진실 가려진 뒤에 구속 여부 결정이 정도
황호택 고문
2월 28일까지 활동시한을 2주 남겨둔 박영수 특검은 시한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다음 주 중에는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국민적 관심 속에 출범한 특검으로서 뭔가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특검 수사에서 가장 미흡한 대목은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의 축소 수사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찰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2014년 12월에 터져 나왔던 정윤회 문건만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최순실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재벌들의 등을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문건의 핵심인 국정 농단은 따져보지 않고 공무상 기밀누설로 사건을 축소했다.
이 사건 수사 후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이번 특검에서는 우 전 수석에게 제기된 진경준 검사장 승진 부실 검증 등에 대해서도 손도 대지 않았다. 수사 인력을 검찰에서 파견받는 특검의 구조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박영수 특검이 의지를 갖고 챙겼어야 하는 대목이다.
특검은 정작 국민이 궁금증을 느끼는 수사는 소홀히 해놓고 스타급 기업인의 구속에 매달리는 것 같다. 법조계에서는 “특수부 검사들은 일단 칼을 빼면 아버지라도 구속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조크가 있다. 여론의 조명이 집중된 사건에서 지명도가 높은 사람을 잡아넣어야 수사의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구속만능주의를 꼬집은 말이다.
법원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이유에는 “뇌물 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뇌물수수죄는 뇌물공여죄에 비해 형량이 무겁다. 뇌물을 받았다는 대통령은 조사도 안 한 채 뇌물을 주었다고 하는 기업인만 구속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그것도 권력의 강요에 의해 갖다 바친 돈인지, 대가를 바라고 부정청탁을 한 돈인지 법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대통령 조사가 마무리된 후에 삼성 총수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박근혜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헌재가 9일로 합의한 대면조사 일정을 흘렸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핑계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39권이 새로 나와 특검의 조사를 받으면 답변이 궁색해지고 헌재 심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 부회장은 불구속 기소를 하는 것이 순리다.
특검은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고, 청탁해야 할 주요 현안이 있었으니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을 입회시키고 재벌 회장들을 만나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이야기를 꺼내고 승마협회 지원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마당에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재 검찰이 새로운 증거라고 제시하는 것은 2016년 2월 박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독대하고 나서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내용에 관한 메모가 담겨 있는 안 전 수석의 수첩이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이 수첩의 임의제출에 동의하지 않아 증거능력에 하자가 있고, 과연 뇌물죄의 스모킹건이 될지도 미지수다.
전 국민의 눈이 집중된 사건에서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판단하는 것도 법관의 책무다. 그런 면에서 지난번에 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부장판사는 용기 있는 법관이다. 영장심사도 재판이다.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중대한 혐의 사실이 추가됐거나 명백한 증거가 보강되지 않았으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의 물결, 중국의 사드 철회 압박용 무역보복에다 소비냉각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택시기사들도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청년실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의 리더십은 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최대 기업 총수가 뇌물죄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면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성장률을 크게 떨어뜨릴 만한 악재다.
그렇다고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라고 하면 “재벌 총수는 구속도 못 하나”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특검이 여론재판을 유도하지 말고 정도로 가면서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진 뒤에 인신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차분함이 요구된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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