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외환위기 극복 사령탑’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별세

동아일보

입력 2017-02-02 17:24 수정 2017-02-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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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환위기 극복 사령탑’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별세

#2.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경제정책조정회의 의장을 맡았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3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향년 74세.

#3.
그는 박정희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까지
정통 경제 관료로 일하며
숱한 경제 정책에 기여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안 작업에 다섯 차례나 참여하며
한국 경제개발 역사를 직접 쓴 산증인입니다.

#4.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뒤늦게 서울대 상학과에 입학한 ‘늦깎이’입니다.
행정고시 6회로 공직에 발을 디뎠고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역임하며
경제 정책의 ‘큰 그림’을 그렸죠.
관가(官家)에서는 아이디어가 많고 두뇌 회전이 빨라
‘꾀주머니’라고 불렸습니다.

#5.
그의 전성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맡으며
외환위기 돌파라는 중책을 맡았죠.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습니다.

#6.
생전에 “일하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말할 만큼
강 전 장관은 일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습니다.

“강 전 장관은 일요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테니스장에 나와 테니스 몇 경기로 몸을 푼 뒤
오후에 간부들을 집합시켜 장관 회의실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전 직원이 휴일도 없이 근무해야 했다.”
-재경부에서 근무했던 한 공무원-

#7.
강 전 장관은 바둑을 좋아했습니다. 고수는 아니었죠.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이 "두 점 깔아주겠다"고 해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번번이 지면서도 동등한 조건의 바둑만 고집했죠.
취미생활도 일처럼 한 겁니다.

#8.
그는 2002년 재·보선에서 정치에 입문해 18대까지 내리 3선 의원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을 정치인 보다 관료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국회에서는 보기 힘든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9.
그에게 췌장암이 발병한 건 3년 전.
수술 후 건강을 되찾은 듯 보였죠.
지난해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을 때 췌장암이 재발했습니다.
쉬어야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10.
지난 총선에서는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MBS) 직접 인수를 제안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던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1.
지난해 투병 중이던 강 전 장관에게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초유의 정책을 추진한 배경을 물었습니다.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고 답했습니다.
공직자들이 ‘무엇이라도 하라’는 성실한 선배의 조언을 유언으로 듣기를 바랍니다.

원본 | 이상훈 기자
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유정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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