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제사음식

황광해 음식평론가

입력 2017-01-25 03:00 수정 2017-0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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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명절 무렵이면 제사 음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다. “바나나도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느냐”는 애교 섞인 물음도 있다. 바나나를 제사상에 올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돌아가신 조상이 바나나를 좋아하셨으면 바나나 사용이 흉은 아닐 것이다. 수박, 참외 등은 없었던 과일이다. 그러나 제사상에 수박, 참외를 사용한다고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과는 꾸준한 품종 개량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나타난 사과도 쓰는 판에 바나나를 피할 이유는 없다.

 제일 자주 받는 질문이 “제사 음식은 어떤 걸로, 어느 정도 차리면 좋으냐”는 것이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고 눙친다. 제사상은 각자 형편 따라 차릴 일이다. 집안 문제다. 남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엉터리 이론도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 순서를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표현한다. 언제, 누가 제안한 것인지 근거는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없는 표현이다. ‘가정의례준칙’(1969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조율이시는 대추, 밤, 배, 감이다. 모두 조선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과일이다. 대추도 과일인지 의문은 든다. 만약 조율이시의 순서로 과일을 놓는다면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참외, 수박, 사과, 귤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홍동백서(紅東白西)도 근거 없는 표현이다. 붉은 과일은 제사상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는 뜻이다. 녹색의 수박, 노란색 참외, 붉거나 푸른 사과, 노란 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의미 없는 표현이다. 제사는 정성이다. 형식만 따지고 정작 중요한 의미는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상(喪)은 고인의 신분에 맞추고, 제사는 후손들의 신분에 맞춘다는 표현이 있다. 제사는 후손들의 경제적 정도에 맞춰야 한다. 정성이 으뜸이다.

 제사가 화려해진 것은 신분제도의 붕괴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양반 수가 급격히 늘었다. 갑오개혁(1894년)으로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도 반상에 대한 의식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우리 집안은…”이라고 뻐기는 이가 많았다. 결혼식, 초상, 제사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신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들의 화려한 행태를 따라갔다. 제사 음식이 화려해진 이유다.

 좌포우해(左脯右해)는 기록에 남아 있다. 좌포우해와 우포좌해(右脯左해) 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묻는 내용이다. 좌포우해는 왼쪽에 고기 포를, 오른쪽에 육장(肉醬·젓갈)을 둔다는 뜻이다. 육장은 고기 장조림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해(해·육장 등 젓갈)와 음료 식혜(食醯)를 혼동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식혜를 둔다’는 표현도 있다. 엉터리다. 식혜는 단술(감주)이다. 

 유교 사회에서 귀하게 여기는 제사 형식은 모두 네 가지다. 천신(薦新)은 새로 난 작물들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이다. 궁궐의 종묘(宗廟)천신과 가정의 가묘(家廟)천신이 있었다. 천신은 거의 사라졌다.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다. 제사와 비슷한 상차림을 마련했다. 역시 사라졌다. 오늘날 사시제를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차례와 제사는 남아 있다. 차례를 ‘명절 제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틀린 표현이다. 명절에는 제사가 아니라 차례다. 차례는 새해 첫날을 알리는 신고식 정도다. 차례상은 매년 돌아가시는 날 모시는 제사상보다 소박한 것이다. 조선은 농경 기반의 유교사회였다. 이제는 농경, 유교국가가 아니다. 유교, 농경국가의 제사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름다운 전통은 형식이 아니라 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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