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울려퍼진 그녀들의 억눌린 절규

손효림기자

입력 2017-01-24 03:00 수정 2017-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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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문제 다룬 연극 ‘하나코’의 두 배우 예수정-전국향

예수정 씨(왼쪽)와 전국향 씨는 다정한 자매 같았다. 이들은 “공연장이 맥줏집, 치킨집이 있는 건물에 있다. 상아탑 같은 곳이 아니라 번잡한 공간에서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초점 없이 처연한 눈빛, 고통을 안으로 삭이기만 하는 모습.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차가운 현실을 그린 연극 ‘하나코’에서 한분이 할머니 역을 맡은 예수정 씨(62)의 연기는 보는 이를 더 아프게 만든다. 

 2015년 초연돼 극찬을 받은 ‘하나코’가 다음 달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막이 오른다. 위안부 생활을 함께 하다 헤어진 동생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나는 한분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로도 제작된 ‘해무’를 비롯해 ‘가족의 왈츠’ 등을 쓴 김민정 극작가가 집필했다. 예 씨와 캄보디아에 사는 렌 할머니 역을 맡은 전국향 씨(54)를 20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 씨는 “연출을 맡은 한태숙 선생님이 렌 할머니 역을 누구와 하고 싶은지 묻기에 곧바로 국향이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연극 ‘과부들’을 함께 했는데 전 씨의 연기력과 친화력이 인상 깊었다는 이유에서다. 전 씨는 수줍은 표정으로 “초연 배우 전원이 다시 모일 정도로 작품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다”고 말했다. 전 씨는 렌 할머니 연기를 위해 캄보디아인에게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대사를 녹음해 듣고 또 들었다.

 이번 공연에는 2015년 12월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반영했다. 예 씨는 “초연을 하던 중 합의가 체결됐지만 공연을 그대로 진행해야 했다”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기를 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헤아려 보려 애쓰고 있다.

 “70년 동안 그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기에 모든 게 안으로 녹아들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감정을 꾹꾹 눌러 응축하려고 해요.”(예 씨)

 전 씨는 간신히 떠올린 우리말 단어를 외마디 비명처럼 토해내고, 좀처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렌 할머니의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렌 할머니는 우리말과 기억을 잊은 게 아니라 지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살 수 있었을 테니까요.”(전 씨)

 ‘하나코’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른 셈법으로 위안부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춘다. 캄보디아로 함께 취재를 떠난 언론사 PD는 할머니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계속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성학자 역시 일본에서 증언하기 싫다는 한분이 할머니에게 약속된 일정임을 강조한다. 

 “위안부 문제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 다들 죄인이죠. 평생 그늘에서 고통받으신 그분들을, 연극을 통해서라도 양지로 모셔오고 싶어요.”(예 씨)

 예 씨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어머니 역을 맡았던 고 정애란 씨의 딸이고, 탤런트 한진희 씨의 처제다. 예 씨의 딸은 연극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어머니가 ‘야야, 그게 돈을 주나 명예를 주나. 니 그거 왜 하노’ 하세요.(웃음) 작품을 할 때마다 인생에 대해 배우고, 밥도 먹고 사니 얼마나 좋아요.”(예 씨)

 전 씨는 최근 남편인 배우 신현종 씨와 함께 제1회 임홍식 배우상을 받았다. 2015년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공연하다 숨진 임 씨를 기려 만든 상이다. 전 씨는 “마음이 무거웠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돼 한편으로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나코’는 올해 하반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들은 “몸이 힘들어도 좋으니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며 ‘하나코’를 공연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월 19일까지. 3만 원. 02-589-1066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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