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5>마지막 그림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입력 2017-01-24 03:00 수정 2017-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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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루이 다비드, ‘무장해제당하는 마르스’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는 신고전주의 미술의 거장입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역사에 깃든 도덕적, 교훈적 주제를 다룬 그림으로 고대 취향을 되살리고자 했지요.

 화가는 격정적 시대 침착한 미술로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탁월한 예술적 기량을 앞세워 프랑스 대혁명의 중심으로 진입했지요. 미술가는 대혁명이 발발한 해,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로마 공화정을 세운 브루투스가 두 아들의 반란죄를 죽음으로 벌한 극적 사건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지요. 급진적 혁명 세력은 자식들 시신 앞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는 브루투스를 보며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희생과 박애 정신이었지요. 화가는 그림을 입회원서 삼아 자코뱅당에 들어갔고 예술로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화가는 혁명이 끝난 후 작업실로 돌아왔습니다. 동지들과 달리 혁명에 깊숙이 개입하고도 살아남았지만 상황은 암울했어요. 하지만 화가는 비범한 재능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속 화가가 된 것이었지요. 화가가 예술 목표를 나폴레옹 이상화로 수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림 속 황제의 영웅적 면모와 함께 화가의 존재감도 극대화되었습니다.

 혁명가와 권력가를 사로잡았던 화가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혁명 당시 행적이 불거져 고국에서 추방당했거든요. 당시 화가 나이 68세였습니다.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당하는 마르스’는 브뤼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중 화가가 제작한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가 삼미신의 춤과 술에 정신이 팔려 비너스에게 무기를 빼앗기고 있군요.

 그림은 화가 특유의 구성과 색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제자가 스승의 그림을 모사한 듯 긴장감과 엄격함은 무뎌졌습니다. 완숙한 노년 작업으로 예술적 위상을 확고히 했던 몇몇 미술가와는 다른 상황이었지요. 화가들의 교과서, 붓을 든 혁명가, 나폴레옹의 어용화가, 실력은 있으나 비겁한 사람 등. 다양한 평가를 받던 화가의 마지막 그림은 영혼 없는 연극 같은 졸작으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림이 우리 생의 끄트머리 시간, 마지막 퍼즐을 떠올리게 해서이겠지요. 무엇을 할까를 넘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자문하게 만들어서겠지요. 욕망에 휘둘렸던 예술 여정에서 사족 같은 마지막 그림이 아쉽고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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