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명시적 청탁 없어도 뇌물” 법조계 “청탁 근거 없으면 애매”

장관석기자 , 허동준기자

입력 2017-01-17 03:00 수정 2017-01-1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이재용 영장 청구]‘재단 출연금은 뇌물’ 법원 인정할까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 대해 433억 원의 뇌물 공여 및 94억 원의 횡령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규철 특검보는 “영장 청구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있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구속영장 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을 분명한 대가 관계가 입증돼야 하는 ‘제3자 뇌물’로 판단한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또 삼성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소유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지원금을 보낸 것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준 ‘뇌물’로 구속영장에 적시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따라서 18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는 특검팀과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 간에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 재단 출연금 뇌물로 볼 수 있나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204억 원의 출연금을 ‘제3자 뇌물’로 적었다. 반면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보기 힘들다며, 대기업의 재단 출연에 관여한 최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에게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특검이 이렇게 검찰과 다른 판단을 한 근거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015년 7월 독대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이 부회장에게 △재단 출연 △승마협회 지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이 세 가지 요구가 모두 삼성 계열사 합병을 통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박 대통령이 도운 대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합병이 이뤄진 다음 재단에 돈이 들어갔는데,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먼저 합병 청탁을 했다는 분명한 근거가 없다면 ‘제3자 뇌물죄’로 보기 모호하다”고 말했다.

 특검이 삼성뿐만 아니라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 경위를 수사하는 데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삼성의 경우 민원(합병)이 먼저 성사됐기 때문에 사후 수뢰죄라는 게 특검의 판단인데, 이런 식이라면 수많은 민원이 있는 대기업들을 모두 ‘제3자 뇌물죄’로 엮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두 재단에 출연한 대기업 53곳 중 돈을 낼 당시 정부에 ‘아쉬운 사정’이 있었던 곳만 골라 뇌물죄로 수사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 ‘부정한 경영권 승계 청탁’ 입증 가능한가

 특검이 ‘제3자 뇌물죄’를 입증하려면 그 전제 조건인 이 부회장의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한 청탁’부터 입증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 합병이 되도록 도움을 달라”고 청탁한 사실이 확인돼야 하는 것.

 삼성 측은 줄곧 “박 대통령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최 씨 모녀를 지원했지만 어떤 청탁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특검도 수사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청탁의 뚜렷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특검 관계자들은 “부정한 청탁이 꼭 명시적 언어로 오가야 하는 게 아니라 부정한 대가 관계만 있으면 성립한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는 “삼성의 재단 출연 목적이 이 부회장 개인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려면 전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 박 대통령과 최 씨, ‘이익 공유’ 했나

 특검은 삼성이 최 씨의 독일 법인에 송금한 돈을 박 대통령에게 직접 준 뇌물로 보고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했다. ‘제3자 뇌물죄’와 달리 구체적인 부정 청탁이 없더라도 박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만 입증하면 되기 때문에 특검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포괄적 뇌물’이 되려면 ‘최 씨의 이익=박 대통령의 이익’이라는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특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이익 공유’ 관계라는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 씨가 받은 돈이 ‘박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받은 것’이라고 입증할 정도로 수사가 돼 있는지 궁금하다”며 “판례상 가족 간에도 ‘이익 공유’는 잘 인정을 안 하는데, 특검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이익 공유’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심각한 법리적 논쟁을 촉발할 것을 특검이 알면서도 법원에 판단의 책임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관석 jks@donga.com·허동준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