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갯벌에 갇힌 한국경제, 지능정보화로 새 부력 찾아야”

박용기자

입력 2017-01-16 03:00 수정 2017-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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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최원식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맥킨지도 디지털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킨지는 2015년 영국의 퀀텀블랙을 인수하는 등 빅데이터 관련 회사를 사들이고 있다. 퀀텀블랙은 빅데이터 분석기술로 세계 최대 자동차경주인 ‘포뮬러원(F1)’ 참가팀의 실적을 끌어올렸던 회사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박용 기자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경제가 병상을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고 청년 실업률이 9.8%까지 상승하는 등 일자리 창출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 할까. 세계 최대 컨설팅사인 맥킨지 한국사무소의 최원식 대표(49)를 만났다. 2012년 한국인 최초로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로 취임한 그는 2015년 한국 경제를 ‘느리게 가는 자전거’로 비유하며 저성장 시대의 위기를 경고했다. 》
 

 ―한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해 말에 서해안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썰물 때 갯벌에 걸린 낚싯배의 모습이 마치 돌아오지 않는 밀물을 기다리는 한국 경제처럼 느껴졌다. 과거엔 밀물이 들어오고 위기는 곧 회복됐다. 지금은 밀물이 다시 올 것 같지 않고, 설령 돌아오더라도 배가 다시 뜰 것 같지도 않다. ‘대한민국호’를 다시 띄울 새로운 부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가.

 “2%대 성장이라는 현실을 벗어나려면 다른 궤도로 진입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동반 성장했다. 외환위기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으나, 위기에 내성이 생겨 다시 그런 경험을 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과 여전히 풀지 못한 과거의 문제들이 있다.”

 맥킨지는 1998년 4월 1차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다’며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경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작성되는 도중 외환위기가 터졌다. 2013년 4월 발간한 2차 한국 보고서에선 위기에 둔감한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가계대출과 교육비의 이중부담이 중산층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과 ‘고용 없는 성장’을 우려했다.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건가. 

 “대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이 이젠 어렵다. 서비스 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저하, 가계부채 등의 문제도 남아 있다. 앞으로 지능정보화에 따른 불평등 문제가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소득의 격차에 대한 불만이 기회 불평등으로 확대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정부가 뒷북 대응을 하면 사회적 이슈로 비화하고 정치화가 돼 오히려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병목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자본생산성을 높여야 했다. 이제는 사회적 자본, 지능정보 사회의 디지털 자본을 축적해 새로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지능정보화는 사물인터넷(IoT),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 AI, 빅데이터, 무인주행 등의 신기술 패러다임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디지털 자본은 디지털 상품 서비스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모든 자원을 말한다. 2%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굉장히 큰 기회인데,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은 정보기술(IT) 선진국 아닌가.


 “하드웨어와 인프라 보급률 등은 선진국이지만 소프트웨어, 플랫폼, 글로벌 데이터 흐름 등이 약하다. 한국의 데이터 흐름 순위는 세계 44위에 불과하다. 인프라가 잘 보급돼 있다고 해서 강국이라고 말하는 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능정보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능정보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뽑아내는 건 대기업인 ‘상어’와 스타트업인 ‘피라미’들이다. 미국의 전자상거래기업인 아마존은 2012년 키바(KIVA)라는 로봇회사를 사들였다. 이를 통해 미국 내 70여 개의 물류창고 절반에 12만 대 이상의 로봇을 쓰고 있다. 더 나아가 계산대가 없는 무인 소매점인 ‘아마존 고(Amazon Go)’를 시애틀 시내에 열었다. 이미 확보한 인프라 위에 지능정보화를 얹어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우리의 상어들, 대기업 중에 이런 회사가 있는가. 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한국에도 ‘피라미 창업회사’가 많이 생기고 있다.

 “기술 혁신과 확산 속도가 빨라 ‘오늘 피라미가 내일 상어가 되는 시대’다. 미국 숙박공유회사인 에어비앤비처럼 기존 모델을 깨고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피라미 기업’이 많이 나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나라엔 연못에서는 잘 살지만 바다에 나가면 죽는 피라미들이 많다. 이들을 글로벌 무대로 이끌어가는 통로를 만들고 처음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성장하게 해주는 환경이 필요하다.”


 ―다음 정부에서 창조경제 간판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방향은 맞는 화두다. 정책적으로 이름이 바뀔지 모르지만 민관이 협력해 더 끌어갔으면 한다. 10년 후 뭔가를 만들어내면 그때 ‘아, 이게 창조경제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까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끌고 가야 한다. 좀더 쉽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실행이 어렵다.

 “헬스케어 분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디지털화된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의 갈등을 풀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총론에 대한 논의만 많고 재미없고 힘든 각론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빛이 나지 않더라도 누군가 땀을 흘리고, 비난을 받더라도 꿋꿋하게 이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최 대표는 “‘도박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된다’고 했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관광 컨벤션 등 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카지노 규제를 풀었다”고 강조했다.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우린 수단이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목표지향적인 방식으로 일했다. 규칙은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 빨리 일을 처리하면 ‘인생 굉장히 잘 사네’, ‘일하는 방법을 안다’는 평가를 들었다.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숙한 만큼 정치 사회 문화적 성숙도가 따라주지 못했다. 이런 간극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 수 있나.

 “독일에서 근무할 때 제한 속도가 없는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규칙에 적응이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우토반이 가능한 건 추월 차로인 1차로를 빨리 달리는 차에 양보해주기 때문이다. 이 규범을 지키지 않는 순간 아우토반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독일은 어떻게 신뢰를 만들었을까.

 “독일에서 면허증을 따려고 6주간 운전학원에 다니며 무척 고생했다. 시험에 합격했더니 평생 쓸 수 있는 면허증을 주더라. 그걸 보고 또 놀랐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면 믿음을 주는 나라가 독일이었다. 신뢰가 형성되는 순간 거래 비용이 줄고, 협동의 기회가 생겼다. 이런 게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축적해야 하나.

 “말로만 하자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달라지니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상호 신뢰가 쌓인다. 이런 노력이 4차 산업혁명의 역기능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국내 전체 일자리의 0.3%만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100% 대체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너무 안일한 전망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직종이든 평균적으로 업무의 50%가 기계로 대체된다는 점이다. 국내 직종의 80% 일자리가 최소 20% 이상 자동화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일이 없어지는 것보다 일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의 개념이 달라지는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마차가 없어졌을 때 마부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자동차 때문에 새로 생기는 직종도 있었다. 변화를 분석하고 어떻게 재교육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자극적 논의만 있으면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만 준다. 우리의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어떤 논의가 필요한가.

 “예전엔 기업 분석을 잘하는 컨설턴트가 유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엔 버튼을 누른 지 1초 만에 10장의 기업 분석 보고서가 나온다. 이런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다. 새로운 역량을 습득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정보를 외우고 지식으로 만드는 역량보다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조합해 쓰는 편집과 기획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정부가 이런 교육 수요에 대응해 굉장히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맥킨지가 최근 펴낸 ‘미래의 속도’라는 책은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버려야 할 것은….

 “뭐든 혼자 하긴 어려워졌다. 독식하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주도해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하지 않으면 대기업도 성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우린 대기업끼리 서로 협력하는 모델을 보기 어렵다.”


 ―한국사무소 대표가 된 지 4년 반이 지났다. 앞으로 계획은….

 “언젠가 맥킨지 평양사무소를 열고 싶다. 여러모로 가슴 벅찬 일이 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기회가 될 것이다. 통일 비용이나 인프라 투자 외에 북한 나름의 경제 시스템이 이미 있다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어떤 시스템을 어떻게 넣어야 하느냐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2만5000여 명의 직원을 둔 맥킨지는 60여 개국 120여 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 컨설팅회사다. 지난해 파키스탄 카라치에 사무소를 열었다.
 

▼ 최원식 대표는 ▼

△1968년 서울 출생
△미국 프린스턴대 기계공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2013∼2015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창조경제분과장
△2014∼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평가
위원회 위원장
△2016년∼현재 산업부 신산업민관협의회 위원
△2012년∼현재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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