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가 나라다

동아일보

입력 2017-01-02 00:00 수정 201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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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 후퇴하기도 하고, 한동안 지체하거나 더러는 순환해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2017년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펴낸 올해의 ‘세계 경제 대전망’ 서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100년 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을 때처럼 세계화에 대한 분노와 저항,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포퓰리즘의 기운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1917년 러시아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혁명을 택했다. 붉은 유령을 막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서구세계가 택한 길은 정치적, 경제사회적 자유의 확대였다.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들어서면서 실각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총리가 남긴 ‘예언적 경고’를 우리는 지금 북한 김정은의 3대 세습 왕조에서 목격한다. “레닌 동지는 프랑스 대혁명의 길을 밟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 혁명은 독재로 끝났다.”

 오랜 기간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준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도 한쪽으로 기울면 진보하기 어렵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이어 한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긴 대통령과 기득권 정치에 촛불을 들어 심판했다.

 2017년의 대한민국은 혁명적인 격변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든,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약속을 지키든 올 상반기 내 헌정사상 유례없는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것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탄생한 ‘87년 체제’가 30년을 맞은 올해,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의 사명은 다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개헌이 시대적 과제로 부각된 이상 대선 이후에도 새 정부 출범과 개헌 어젠다로 한국은 격동할 것이다.

 격랑의 한가운데, 대한민국호(號)가 난파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선입견 없이, 세계가 성공한 혁명으로 평가하는 일본의 메이지(明治) 유신을 들여다보자. 150년 전인 1867년, 700여 년을 내려오던 막부(幕府)가 스스로 메이지 일왕에게 정권을 바쳤다. 대정봉환(大政奉還). ‘메이지 유신’의 칼을 뽑은 젊은 지도자들은 부국강병의 비전을 이룩하기 위해 자기희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를 보였다. 단칼에 일본을 뒤엎기보다 한 걸음씩 다 함께 가는 점진적 개혁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어냈다.

 비슷한 시기 남북전쟁(1861∼1865)을 북부의 승리로 끝낸 미국은 상처 입은 남부에 보통선거 확대 등 포용적 재건정책을 펼쳐 1877년 ‘진정한 하나의 미국’으로 대통합을 이룩했다. 우리 지도층에게는 그런 비전과 자기희생,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는가. 점진적 개혁으로 대통합의 결실을 이룰 리더십과 협상력은 갖췄는가.

 국민은 한 줌의 정치인보다 위대했다. 탄핵의 헌법궤도를 비켜 가려던 정치권을 돌려세운 것도 촛불이었다.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섰음에도 연행자 한 명 없고, 유리창 한 장 깨뜨리지 않은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한 사람, 한 사람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이다.”

 내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 2015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신년사설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통령을 포함해 국가라는 공조직을 사유화하는 공직자는 국가의 암적 존재일 뿐 아니라 역사의 중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을 용서할 수 없다면,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내 안의 최순실’도 용납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광장의 민의로 국가를 움직일 건가. 공정한 국가, 투명한 시장, 성찰적 시민사회가 다 함께 가는 정치 공동체가 공화정이다. 이제 민주공화국의 주인답게 차가운 머리로 미래를 바라볼 때가 됐다.

 대선이 성큼 당겨진 것은 나락으로 떨어진 국운(國運)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소명(召命)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지난해 동아일보와 국가미래연구원이 꼽은 핵심 가치가 ‘공정’이었다.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분노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과도한 성장의 과실을 챙긴 일부 기득권층의 탐욕에서 나왔다. ‘기회의 문’을 넓힐 때가 됐다. 유권자들은 눈 밝게 살펴야 한다. 어떤 대선 후보가 공정한 경쟁과 분배 속에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양극화를 해소함으로써 공동체를 회복할 비전과 리더십을 가졌는가를.

 각 대선주자는 대선에서 내각제가 됐든, 분권형 대통령제가 됐든 자신의 개헌안을 ‘제1공약’으로 내걸어 국민 심판을 받아야 한다. ‘2017년 체제’를 열 새 헌법은 통일한국과 1980년대와는 달라진 기본권 및 복지·환경, 정보화·다문화 사회구조, 지방분권 체제가 반영돼야 한다. 특히 기소독점권과 수사지휘권, 수사권이란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을 청와대로부터 떼어내 ‘검찰 공화국’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초(超)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Hyper-Uncertainty)’다. 이달 취임하는 트럼프가 ‘21세기의 차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거래’를 통해 올가을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할 시진핑 국가주석에 맞서는 신(新)냉전을 재개할 수도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한국 리더십의 공백기인 올 초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을 결합한 고고도 핵폭발 등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대량살상무기(WMD)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차기 대통령은 실리를 내세우는 트럼프 측에 한미동맹은 중국 때문에 흔들릴 수 없는 대한민국 안보의 근간인 동시에 미국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20년 전 1997년 외환위기의 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세계는 그렇지 않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경제를 포함해 세계 경제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더구나 한국은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하는 ‘인구절벽’ 시대에 들어서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은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 산업 경쟁력의 위기를 창의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즉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 역량 부족으로 진단했다. 선진국의 개념설계를 빠르게 모방, 개량해 온 성장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 경쟁력부터 다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의 글로벌 경제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획기적 구조개혁은 더더욱 절실하다. 

 정유(丁酉)년,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에 섰다. 역사는 도약하기도 한다. 한국은 20년 주기로 엄습한 위기를 국가적 발전 기회로 전환시킨 나라다. 1960년 4·19와 1961년 5·16 뒤엔 빈곤을 극복했고, 1979년 10·26 이후엔 국가 주도 경제를 시장경제로 강화시켰으며,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 체질을 바꿔냈다. 무능한 정치, 북한과 주변 4강에 휘둘리는 외교안보, 경쟁력이 고갈된 산업,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구조가 한꺼번에 폭발한 위기 상황을 우리는 치열한 시민의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고단해도 이 일을 해낼 사람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밖에 없다. 내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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