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싼 감기약, 10배 비싼 독감약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입력 2016-12-30 03:00 수정 2016-12-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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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독감이 급증하자 교육당국은 임기응변 격으로 조기 방학을 선택했다. 보건당국은 지난해보다 빨리 찾아온 독감에 대해 연령별 독감 환자 수를 알리는 독감경보제를 가동하지 못하면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자녀가 감염병에 걸려도 등교를 시키는 학부모의 무책임한 인식까지 겹쳐 역대 최대 독감 환자 발생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지난해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2009년엔 신종플루 사태를 겪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송년회를 하면서 의대 동문을 만났다. 지금은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하는 그는 최근 독감에 걸렸지만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타미플루와 진통제를 복용하며 마스크를 쓴 채 환자를 진료했다고 고백했다. 쉬려니 눈치도 보이고 예약 환자들을 돌려보내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대부분 병·의원이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메르스나 신종플루 모두 ‘독한 독감’의 일종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호흡기 감염 질환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유독 독감에 상당히 관대하다. 현 독감 바이러스는 1968년 무려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홍콩독감과 같은 유형(H3N2형)인데도 말이다.

 내년에도 이러한 사태가 또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독감 백신 접종률을 높여야 한다. 이번에 학생들 사이에서 독감 환자가 급증한 것도 이들의 백신 접종률이 20∼3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에서는 올 초부터 만 6개월∼만 59개월 어린이에게 무료 접종을 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무료 접종 덕에 백신 접종률이 80%가 넘었다. 물론 독감 백신을 맞아도 30∼40%는 독감에 걸리지만, 그래도 덜 고생하고 감염도 덜 시킨다.

 이와 더불어 모든 연령층에서 독감 치료제의 보험급여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감기 환자가 처방받는 약은 대부분 보험급여가 돼 초진 진찰비를 포함한 본인 부담금이 대략 1만 원 이하다. 유독 감기보다 더 독한 독감의 치료제는 전 연령층에서 보험급여가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인 독감 환자가 종합병원을 찾으면 초진 비용 2만1200원(동네의원은 4300원), 독감 바이러스 검사비 3만4000원,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5일 치가 5만1700원 등으로 총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비용에 부담을 느껴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많다. 타미플루는 국내에 들어온 지 16년이나 된, 안전성이 검증된 대중적인 전문의약품인데도 부작용의 위험성을 이유로 여전히 본인 부담이 100%인 비싼 비보험약으로 등재돼 있는 것은 문제다.

 이와 더불어 독감에 걸렸을 때 다른 사람의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감 병가와 같은 조치를 기관장이 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병원은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몰리는 곳인 만큼 의료진 또는 행정직원이 독감에 걸렸을 때 적극적인 병가 조치가 필요하다. 독감에 걸려도 동료에게 폐 끼치기가 미안하고 대체 인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 있는 직원은 쉬거나 혹은 원내에 있으면 환자 보는 일은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일을 쉬는 경우엔 최소한 해열제를 쓰지 않고 24시간 발열 증상이 없을 때만 직장 복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손 씻기 위생을 홍보하는 수준이 아닌 현실을 파고드는 엄격하고 강력한 독감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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