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의 한결같음

여성동아

입력 2016-12-29 14:31 수정 2016-12-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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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영화 판에서 갈고닦은 연기력으로 ‘미생’에서 이제는 ‘완생’에 도전하는 변요한. 서른한 살의 젊은 배우를 지키는 힘은 인기에 도취되지 않는 한결같음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지난 12월 14일 극장에 걸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관객에게 이런 궁금증을 던지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의사 수현(김윤석)은 오지에서 한 소녀를 구하고 그 답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한 알약을 선물받는다. 호기심에 알약을 삼킨 수현은 30년 전 자신(변요한)으로 돌아가고 그는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사건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과거가 바뀌면 현재의 삶도 달라진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영화는 그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 작품에서 과거의 수현 역을 맡은 변요한(31)은 현재의 수현으로 등장하는 연기 베테랑 김윤석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내면 연기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2014년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그가 연기한 한석율이나 지난 3월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평이다. 변요한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를 만난 건 운명 같다”며 군 복무 시절을 떠올렸다.

“이 영화의 원작인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군대에서 처음 읽었어요. 소재가 신선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죠. 그런데 그 영화의 시나리오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찍을 때 제게 들어왔어요. 처음엔 그 책이 원작인지 몰랐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알았죠. 순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죠.”


▼ 김윤석 씨와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떤가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다닐 때부터 선배님 연기를 교과서처럼 여기며 봤어요. 2008년 심야에 우연히 선배님이 출연한 영화 〈추격자〉를 봤어요. 그 후로 선배님의 작품을 찾아 보면서 연기 공부를 했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배님의 연기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 ‘과거’의 수현을 연기하기 위해 ‘현재’의 수현인 김윤석 씨와 촬영 전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동일 인물이니 서로 이렇게 연기를 맞추자, 라는 식의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았어요. 사람마다 자신만이 가진 버릇이나 특징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영화 속 수현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변하죠. 누구나 30년 정도 지나면 과거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지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세월이 지났는데 말투나 행동을 똑같이 하면 오히려 어색할 거 같아서 일부러 다르게 한 측면도 있고요. 두 수현이 확연히 다른 건 말투예요. ‘현재’의 수현은 부산에서 산 지 오래돼서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쓰고, ‘과거’의 수현은 부산으로 간 지 얼마 안 돼 사투리가 익숙지 않아요. 그런 차이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현의 이마 흉터는 실제로 제게 있는 건데, 김윤석 선배님이 저와 맞추려고 분장을 하셨죠.


▼ 돌고래 조련사 연아를 연기한 채서진 씨와의 러브 신이 무척 자연스러웠어요. 둘이 한예종 동문이던데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나요.

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몰랐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동문 후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더 응원해주고 싶었고, 둘의 사랑이 영화에서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수현과 연아는 6~7년 연애한 사이니까 자연스럽고 예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재의 수현이 3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간 것도 결국 그 사랑을 못 잊어서고요.



▼ 어떤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나요.

어릴 땐 좋아하는 타입이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히 이상형이랄 게 없는 거 같아요. 다만 서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고, 싸워도 뒤끝 없이 화해할 수 있는 친구처럼 편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을 이번 영화에서처럼 운명적으로 만났으면 해요. 빨리 결혼하고 싶거든요(웃음).


▼ 지금까지 ‘모태 솔로’는 아닐 텐데, 그간의 사랑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나요.

사랑뿐 아니라 모든 경험에서 느낀 감정들을 제 안에 쌓아두고 있다가 연기할 때 필요한 부분만 끄집어내요. 저의 감정이 장면 장면에 녹아들지 않으면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지 않아 꼭 로봇처럼 보일 것 같거든요. 제가 낯선 것을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내 도전하는 걸 즐겨요. 예를 들면 번지 점프 같은 거요. 정말 무서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과거의 느낌과 감정을 기억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 뭐든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으니까요.


▼ 이번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울컥했는데, 변요한 씨에겐 그런 지점이 어디였나요.

완성된 영화를 시사회에서 처음 봤는데, 저는 마지막에 김윤석 선배님이 풍선을 들고 서 있는 장면에서 울림이 있었어요. 30년 전과 다르지 않은 한결같은 그 모습이 한 여자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 수현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지 못하고 스스로 가두는 외로운 사람 같아 보였어요.

연기하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수현이 느끼는 아픔의 크기를 알 순 없지만 저도 스스로를 괴롭혔던 적이 있고, 외로웠던 적도 있고, 제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시간도 있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는 그때의 힘들었던 감정을 되살려 외로운 마음 상태를 절제된 내면 연기로 얼마나 잘 표현해내는가가 관건이었죠.


▼ 무엇 때문에 힘들었나요.

〈미생〉을 하기 전에는 독립 영화를 꾸준히 찍었는데 연기 욕심과 열정이 너무 많다 보니 ‘정말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고민으로 늘 괴로웠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저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고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줬죠. 그때 깨달은 바가 있어 작품을 할 때 캐릭터에 연연하지 않아요.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서요.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면 각각의 캐릭터가 조화를 이뤄 작품이 살 수 있죠.


▼ 이번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뭔가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거예요. 저 역시 이 작품을 하면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삶에서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를 깨달았거든요.


▼ 그동안 연기한 〈미생〉의 한석율,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 이번 영화의 수현 가운데 실제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군가요.

다 조금씩 닮았어요. 진짜 외로울 때는 이방지 같은 모습이 있고, 오래된 친구들 앞에서는 한석율처럼 놀기도 하거든요.


▼ 평소에는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들었어요.

낯가림이 있긴 한데, 그건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대하는 게 오히려 상대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면서 편안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모습이 상대방에게는 내성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영화 〈토요근무〉로 데뷔한 지 3년 만인 2014년, 처음 출연한 드라마 〈미생〉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거저 얻어진 행운은 아니었다. 한예종 재학 시절 여러 독립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 그때부터 이미 ‘될성부른 떡잎’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를 탐내는 충무로 감독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위의 호평에 도취되지 않고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꾸준히 연기 폭을 넓혀왔다. 덕분에 드라마 〈구여친클럽〉과 〈육룡이 나르샤〉, 영화 〈목격자의 밤〉 〈들개〉 〈소셜포비아〉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갖게 됐다.



▼ 배우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말을 좀 더듬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성격이 급한 게 원인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내성적이어서 그런 줄 알고 중학교 3학년 때 연극을 시키셨어요. 마침 아버지 지인 중에 극단에서 연출을 하는 분이 계셔서 저를 아역으로 써주셨는데 그때부터 배우의 꿈을 갖게 됐죠.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 연극을 했고요.


▼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대학에 들어가는 바람에 스물넷에 대학 1학년이 됐죠. 부모님은 제가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는 걸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스태프들과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배우로 살 수 있어서 늘 즐거웠어요. 물론 힘든 적도 있고 작품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런 시간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죠.


▼ 〈미생〉으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그런 기분을 딱 2주 동안 즐겼어요. 데뷔 전 제게 “항상 겸손해라. 자만하지 말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서요. 아버지는 주변의 흔들림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소중한 걸 지키는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 주문을 걸죠. ‘너무 반가운 일에 절대 취하지 말자’고요.


▼ 혹시 의술의 힘을 빌려 고치고 싶은 부위가 있나요.


저는 피부과도 안 가요. 세월이 묻어나는 주름진 얼굴의 배우들이 멋있더라고요. 키가 큰 배우도 부럽지 않아요. 저는 제게 맞는 키로 태어난 것 같아요(웃음).


▼ 쉴 때는 뭘 하는지 궁금해요.

운동을 즐기고, 노래방도 자주 가요. 친구들 만나서 커피 마시며 얘기도 하고요.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뮤지컬 〈헤드윅〉을 하고 나서 한 달가량 쉬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한 것은 친구들과의 여행이에요. 남자 9명이 홍콩에 가서 엄청 많이 걷고, 마시고, 수다 떨고, 싸우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어요. 연극이나 독립 영화를 함께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라서 가족처럼 지내요. 그중에는 결혼한 친구도 있는데 아빠가 되기 전에는 결혼 생활을 불안해하더니 지금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변요한 주위에는 친구가 많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자주 찾는 배우 이동휘, 류준열, 지수, 아이돌 그룹 ‘엑소’ 멤버 수호 등이 대표적인 절친으로 꼽힌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들은 ‘byh48’로 불린다. ‘변요한 사단’이라는 의미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을 꼽는다면.

아직은 초보라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아요. 악역도 해보고 싶고, 독립투사 같은 역할도 욕심나요. 앞으로 어떤 장르의 작품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 걸맞은, 대중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안에서 제게 필요한 역할을 하려고 해요.


▼ 만약 수현처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작년에 결혼한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중3, 제가 고1이던 시절로 가고 싶어요. 아버지가 개척 교회의 목회자여서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어요. 여동생이 저를 많이 배려해야 했죠. 그 때문에 동생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저와 부모님에게 불만이 많이 쌓였는데 제가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표현을 한번도 하지 못했어요. 연년생이라도 제가 오빠니까 동생이 제게 양보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친하게 지내는 ‘솔 메이트’ 같은 존재인데, 과거의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 그럼 3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돼있을까요.

그때는 배우보다 좋은 가장이고 싶어요. 지금은 꿈을 향해 달리는 청년이지만 30년이 흐른 뒤에도 가정보다 일을 우선순위에 두면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 같아요. 대중이 원하면 배우 생활을 계속하겠지만, 언젠가 저를 찾는 사람들이 없을 수도 있고 밑천이 다 드러나 안 보느니만 못한 존재가 된다면 기꺼이 연예계를 떠날 겁니다. 영화든,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와 인터뷰를 하는 순간순간 사랑과 우정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영화 속 수현이 겹쳐 보였다. 각박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사람과 젊은 시절 가슴 설레는 순수한 사랑의 향기가 그리운 이들에게 변요한이 전하는 선물 같은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강추’한다.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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