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핑크 남자色

김동욱 기자

입력 2016-12-22 03:00 수정 2016-1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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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배우 이동휘는 핑크색 의류를 즐겨 입는 남성 연예인 중 대표적 인물이다. 내년 남성복 시장에서도 핑크가 더욱 많이 눈에 띌 것으로 보인다. “남자가 무슨 핑크”라는 말에 당당하게 “남자라면 역시 핑크”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DB
 “남자라면 역시 핑크 아닌가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말이다. 남자가 핑크라니? 남자와 핑크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통념 아닌가.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성(性)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가 되면서 컬러의 남녀 구별도 무너지고 있다. 최근 패션에서는 핑크가 더 이상 여성의 상징이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남성용 코트를 비롯해 셔츠, 바지 등에 핑크를 접목시키고 있다.

 프랑스, 미국 등 세계에 진출한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는 올겨울 핑크 코트를 출시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브랜드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정유경 실장은 “패션에서 남녀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핑크가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요즘 여성들이 파란색 계열을 즐겨 입듯, 남성들도 핑크색을 즐겨 입는 추세”라고 말했다.

 패션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헤드폰 등 전자제품과 소품에서도 남성들의 핑크 추구는 뚜렷하다.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6S를 내놓으면서 핑크에 가까운 로즈골드 색상을 도입해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도 올해 갤럭시S7을 출시하면서 핑크골드를 출시했다.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핑크골드는 여성용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남성에게 많이 판매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용품에서도 핑크는 남성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골퍼인 버바 왓슨은 대표적인 핑크 마니아로 핫핑크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본지가 패션 리더로 꼽히는 20∼40대 남성 4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 핑크색 의류나 생활용품 등을 이용하거나 소유해 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12명(27%)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영화에서 분홍색 셔츠를 즐겨 입은 할리우드 서부영화의 주인공 존 웨인. 동아일보DB
 사실 핑크가 여성의 색상으로 여겨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남자아이나 가톨릭 사제가 핑크색 옷을 입었다. 1918년 미국에서 발간된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년에게는 핑크색, 소녀에게는 푸른색이 잘 어울린다. 그 이유는 핑크색이 더 섬세하고 강한 색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미국 서부극의 아이콘 존 웨인은 핑크색 옷을 즐겨 입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색채전문가인 청운대 건축공학과 문은배 교수는 “조선시대 선비들을 보면 핑크와 유사한 복사꽃색 도포를 즐겨 입었다. 그만큼 핑크색은 남녀 구별 없이 사용된 색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에게 남성다움이 강조되고, 화사한 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핑크=남성’이라는 공식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여성들을 공략하기 위해 ‘핑크 마케팅’이 도입되면서 ‘핑크=여성’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우영미의 장 실장은 “핑크가 과거처럼 중성적인 색상으로 인식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11번가 차별화패션팀 박철민 MD는 “핑크를 입거나 사용하는 남성을 패션 감각도 있고, 오픈 마인드에, 다정할 것 같다고 여기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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