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박병원 경총 회장의 침묵은 비겁하다

홍수용 논설위원

입력 2016-11-23 03:00 수정 2016-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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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처음 증언한 사람이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지난해 11월 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회의에서 “재단법인 ‘미르’라는 것을 만들어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 굴러가는 것 같다”고 폭로했다. 올 10월에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이 회의록을 세상에 알렸다. 박 회장을 두고 여러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는 비겁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안종범에게 경고했어야

 비판의 대상이 왜 하필 박병원인가 물을 수 있겠다. 그의 전직은 노무현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경제수석과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다. 현직은 경총 회장 외에 청년희망재단 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 등이다. 좌우 정권의 낙하산 검증을 뚫어냈다. 그 덕에 그는 불통 정부에서 민간과 관료사회를 가리지 않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1년 전 문예위 회의 때 박명진 위원장은 박 회장에게 미르 문제를 놓고 정부에 한번 ‘시비’를 걸어 달라고 요청했다. 박 회장의 답은 “어디까지나 위원장님 이름으로…”였다. 그는 쓴소리를 하면서도 늘 선을 넘지 않았다.

 당시 박 회장은 후배 관료인 최상목 비서관에게 배경을 물어보고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강력한 경고를 할 수 있었다. 회계의 기본도 모르느냐, 기업 돈이 쌈짓돈이 아니다, 직전 정부가 미소금융재단을 만들면서 기업이 운영하도록 설계한 이유를 아느냐…. 그런데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침묵했다. 박 회장은 포스코가 미르에 30억 원을 출연하는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패를 알고도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박 회장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 아니었느냐”고 한 언론에 답했다. 그런 뒤 다른 언론에는 문화융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글을 썼다.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처세술이 놀랍다.

 미르재단 출연은 물 건너갔을지 몰라도 기업 돈 뜯기는 한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국제문화교류 분야 민간협업사업 추진방향’이라는 연구를 끝냈다. 여러 정부 부처가 기업에 동시에 손을 벌리다 보니 기업의 피로감이 커진 만큼 창구를 단일화하자는 결론이다. 기업을 체계적으로 뜯어먹겠다는 얘기를 고상하게 포장했다. 아울러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문화예술 분야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3300만 원짜리 용역보고서로 그럴듯한 근거를 마련했다. 기부는 기업에 맡겨둘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효과연구를 해가면서 압박할 일이 아니다. 정경유착에 대한 정부의 집착이 무서울 정도다.

 사람들은 지금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동일시하고픈 정체성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청소년은 MC 김제동, 가수 이승환, 배우 정우성에게 열광하지만 닮고 싶은 인물에 기업인은 없다. 대중의 인식이 이렇게 흘러가면 기업은 소비자 없는 껍데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노동개혁 총대라도 메라

 사람들은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이윤을 위해 적당한 값어치의 노동력을 ‘투입’하는 현실을 읽기 시작했다. 동전의 뒷면을 본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노동개혁이 박근혜 정부의 음모라는 주장은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기업과 부당거래를 한 대가로 연봉제 도입과 저성과자 퇴출을 밀어붙인다는 의혹을 방치해선 노동개혁은 불가능하다. 박 회장이 진위를 증언하라. 이 총대를 메지 않는다면 경총 회장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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