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호수따라, 단풍숲길따라… 가을을 걷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6-11-19 03:00 수정 2016-11-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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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포항 오어사-내연산 12폭포

내연산 12폭포 계곡의 관음폭포 일대. 선일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모습으로 연산폭포는 현수교의 지지대(왼쪽) 뒤편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올 단풍은 때깔이 그리 곱지 못하다는 게 세평이다. 지난여름의 살인적 폭염 때문이란다. 생각해보니 끔찍했다. 더위는 더위대로, 그게 물러간 뒤 전기요금은 요금대로. 그래서 올가을은 더 소중하다. 그런데 이젠 가을조차 모두의 것이 아니다. 느끼려 노력하지 않으면 왔는지, 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후다닥 사라진다. 지구온난화로 봄과 가을이 없어진 것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서 올핸 벼르고 별러 적시에 적소를 찾았다. 포항의 운제산 오어사와 내연산 12폭포 계곡이다. 지난주에 이곳 단풍은 예상대로 고왔다. 해풍에 실려 유입되는 습기 덕분이다. 설악산에 멋진 단풍이 드는 이치와 같다.

 오어사는 흔치 않은 물가 사찰이다. 그 물 오어지는 절 앞 계곡의 물을 둑을 쌓아 가둔 것. 그 물가로 둘레길(7km)을 조성했는데 운제산 단풍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내연산 12폭포 계곡은 보경사 경내로 이어지는 완만한 계곡길. 열두 폭포가 빚어내는 멋진 경관을 단풍일색의 숲길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찬바람 나는 이즈음 바다는 생선 맛이 가장 좋은 때다. 겨울나기를 위해 지방을 축적한 생선마다 살이 올라서다. 구룡포 덕장서 숙성시킨 햇과메기도 파릇한 배추와 함께 나오고 알배기 도루묵도 어시장을 덮는다. 죽도시장엔 이런 생선으로 만든 물회도 지천. 이 가을 포항으로 단풍여행을 떠나는 것은 미식에 식도락까지 겸해 그 자체로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다.


산과 계곡과 호수의 조화

 익산포항고속도로의 포항 나들목을 나와 오어사로 향하는 길. 감포·구룡포 방향 국도 31호선 ‘영일만대로’는 형산강을 가로질러 오천 나들목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들어선 오천면. ‘정몽주로’를 따르다 보니 삼거리에선 ‘정몽주 생가’ 팻말도 만났다. 절로 향하는 길은 붉고 노란 가을빛 일색이다. 가로수 단풍이 운제산 오어사의 멋진 추색을 예고한다. 

 평일이라 왕복 2차로의 절 진입로는 한산했다. 주말과 휴일엔 몰려드는 차량으로 엄청 북적인다고 하는데…. 한참을 오르니 거대한 둑이 보였다. 거기에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오어지’. 이후 도로는 오어지(인공호수)를 끼고 구절양장의 산자락을 타다 커다란 일주문까지 다다른다.

 드디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대에 창건한 오어사. 그런데 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절 앞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현수교(원효교)다. 거대한 출렁다리 때문인지 절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찾는 이는 많다. 호수와 조화를 이룬 주변의 선경 덕분이다. 애초 절이 있는 곳은 계곡중턱이었을 텐데 물막이로 수위가 오르며 절과 물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 수위가 멈춘 건 절 뒤편의 계곡. 덕분에 절은 계곡 풍광을 고스란히 정원으로 삼고 있다. 그 계곡의 양쪽 산자락엔 제각각 암자가 있다. 다리 건너로는 원효암, 절 뒤로는 자장암. 원효암은 절에서 보이지 않는다. 반면 출렁다리 앞 산길로 300m쯤 들어가 있는 벼랑 끝의 자장암은 아득하게 보인다. 그 자장암에선 거꾸로 오어지와 오어사, 계곡과 주변 산경까지 거침없이 조망된다.


산중호반의 단풍숲길을 걷다

 오어사는 운제산 등반로의 초입이다. 그래서 등산객도 많다. 하지만 나는 오어지 둘레길(7km)을 택했다. 호반의 단풍 숲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가을 오후를 즐기고 싶어서. 길은 수면과 산자락이 만나 이룬 물가를 따른다. 단풍 숲은 햇볕 한 줌 들지 않을 만큼 빽빽하다. 그래서 숲길은 아늑하고 고적했다. 평화로운 호수가 가을하늘과 더불어 시야를 감싸니 행복했다. 40분쯤 걷자 돌밭의 계곡에 다다랐다. 그 물은 징검다리로 건넌다. 호수로 유입되는 세 개의 계곡 물길 중 하나. 예서부터 둘레길은 이제와는 반대편의 호안을 따른다. 4km가량을 더 걸으면 출발했던 출렁다리로 돌아간다.


파묻은 보물이 폭포로 되살아나다

 내연산의 12폭포 계곡을 오르려면 보경사를 지나야 한다. ‘보배로운 거울’ 보경(寶鏡)은 절터에 묻혀 있다는 ‘팔면보경’을 뜻한다. 602년 이 절을 창건한 지명법사가 중국유학 중에 한 도인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는 ‘보경을 묻고 거기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와 근방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는 도인의 말에 따라 이 절을 세웠다. 보경사는 오어사와 달리 대찰이다.

 계곡은 북쪽 내연산(710m)과 남쪽 천령산(775m) 자락이 만나 이룬 깊은 골이다. 절부터 향로봉(930m) 아래까지 7.9km로 긴 편이다. 그 도중에 열두 개 폭포가 걸렸다. 그래서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려왔다. 진경산수의 완성을 고했다는 겸재 정선의 작품 ‘내연삼용추’ 현장도 여기다. ‘용추(龍湫)’란 폭포수가 고이는 용소(龍沼). 삼용추는 아래로부터 상생·관음·연산의 세 폭포를 일컫는다.

 이 계곡의 길 역시 걷기에 부담이 없다. 완만해서다. 개울가를 따르다보니 물가를 찾기도 수월하다. 물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평화롭다. 계곡은 수량도 일정해 언제 찾아도 운치가 살아있다. 한여름엔 짙은 녹음으로 시원하고, 요즘 같은 가을은 단풍으로 그윽하다.

 연산폭포(보경사로부터 2.4km 거리)에서 나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운 누각 선일대(仙逸臺)까지 올랐다. 거긴 내연산의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곳. 향로봉으로 이어진 긴 계곡과 그 양쪽으로 단풍이 든 산악, 관음 연산 두 폭포가 걸린 곳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기막힌 위치다. 여기서 보게 되는 경치만으로도 포항 여행은 가치가 있다.

 
 
▼혜공스님 ‘물고기 똥’으로 원효에 가르침 내려▼
 
‘내 물고기’ 吾魚寺 이름의 유래

 
운제산 자장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어지. 가운데 물가 은행나무 밑이 오어사 경내다.
 병을 고치는 등 도력도 높았던 혜공 스님. 원효는 그의 뒤를 쫓으며 그를 닮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런 원효를 혜공은 ‘흉내만 내는 얼치기’라고 늘 통박했다. 그럼에도 쉬운 말로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높은 법력에 혜공에 대한 원효의 존경심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스님은 항사사(지금의 오어사) 계곡에서 함께 물고기를 잡아먹고는 바위에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원효의 구린 변과 달리 혜공은 물고기를 누는 것이 아닌가. 눈이 똥그래진 원효를 향해 혜공은 이렇게 일갈했다.

‘산더미 같은 경론을 섭렵해도 그것으로 제 한 몸의 부귀영달만 탐한다면 이렇게 귀한 음식을 똥으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나 오(吾) 물고기 어(魚), ‘내 물고기’를 뜻하는 ‘오어’란 특별한 이름은 이렇게 태어났다. 항사는 두 스님이 활동하던 7세기 신라 때 이곳 지명. 오어지 둘레길의 종착점인 ‘항사리 마을회관’에서 그 이름을 확인한다(법보신문에 기고한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의 ‘혜공스님의 물고기’ 참조).
 
포항(경북)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 서울∼포항의 고속도로 루트는 ‘중부내륙∼경부∼대구·포항’. ◇철도: KTX동해선. 포항역은 여객이 타고내리는 전국의 역 중 최동단.


 오어사: 운제산의 운제(雲梯)는 ‘구름다리’. 절 계곡 양쪽 암자의 원효와 자장 두 스님이 서로 오가기 어려우니 계곡에 구름다리를 드리우자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혜장까지 7세기에 세 스님의 수행터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1. 054-292-2083

 내연산 12폭포 계곡:
보경사∼연산폭포(2.4km) 왕복 1시간 반 소요. 보경사 문화재구역 입장료(3500원)를 내고 사찰을 경유해야 한다. 군립공원 주차비 4000원 별도. 포항시내에서 국도 7호선으로 31km 거리.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054-262-1117


 온천:
◇오어사 근방: 11km 거리에 ‘영일만온천’(054-285-0101)이 있다. 포항시 남구 대송면 운제로 386번길 21 ◇내연산: 보경사 사하촌에 ‘연산온천파크’(www.yeonsanspa.com)가 있다.

 맛집:
◇비빔회(위 사진): 물회와는 또 다른 맛. ‘명천회식당’에선 청어 멸치 꽁치 전어 등 등푸른 생선으로만 낸다. 9000원. 북구 동빈1가 71-74. 054-253-8585 ◇황지연못주점: 대도동(남구) 주점가. 싱싱한 아귀로만 만든 생아귀탕과 생아귀찜 전문식당(주인 최혜숙). 오후 3시부터 영업. 054-277-1227


 포항 볼거리: 해변은 영일대해수욕장, 해맞이는 호미곶 강추. 호미곶엔 호미해안둘레길(25km)도 있다. 포항시내 운하크루즈도 포항의 명물.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 읍내 장안동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짓고 살았던 집을 복원한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다. 포스코 야경은 구 형산강다리 혹은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조망. 죽도어시장에선 싱싱한 해물과 물회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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