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대리점 이면계약 판쳐… 고객정보까지 팔아넘겨

곽도영기자

입력 2016-11-17 03:00 수정 2016-11-1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단통법 이후 경영 어려워지자 월세-수익 일부 받고 전산망 넘겨
정보교육 안받고 버젓이 위탁영업… 이통사 “말단조직까지 점검 한계”


 
경기 성남시의 한 이동통신 판매점주 박모 씨(38)는 올해 초 인근 SK텔레콤 대리점에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대리점주가 매장 운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을 지경이 되자 “월세와 수익 일부를 내면 매장과 본사 전산망을 그대로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대리점은 특정 이통사와 계약을 맺고 그 회사 제품만 판매한다. 판매점은 대리점들과 계약을 맺은 뒤 이통 3사의 휴대전화를 모두 취급하는 곳이다.

 이에 박 씨는 월세와 관리비, 요금 수수료와 단말기 개통 리베이트 중 일부를 대리점주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매장을 받아 10개월이나 운영했다. 본사 계약이나 전산망 정보보안 교육도 거치지 않고 편법 이면 계약만으로 이통사 전체 가입자 정보가 포함된 전산망을 손에 넣은 것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일부 대리점과 판매점을 통해 소비자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

 박 씨가 넘겨받은 SK텔레콤 영업전산망에서는 휴대전화번호만 입력하면 이름(가운데 글자만 *로 표기), 사용 중인 요금제와 가입 기간, 휴대전화 종류, 구 단위까지의 주소가 노출된다. 통신 판매 경험조차 없는 일반인이 임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위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박 씨는 “원래는 본사에서 정보보안 교육을 마쳐야 관리할 수 있는 정보지만 사실상 영업 현장에서는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편법 위탁 경영 구조는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SK텔레콤 대리점들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KT, LG유플러스 할 것 없이 통신 3사 모두 편법 위탁 경영을 모른 체하고 있어 고객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은 더 커진 상황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대리점을 두 달간 위탁 경영했다는 이모 씨(36)는 “개통 방법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현장에서 전산망 다루는 법을 배워 그냥 바로 영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본사와 무관한 판매점 직원 등이 전산망에 접근해 고객정보를 처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정보통신망 무단침입’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대리점뿐만 아니라 문을 닫은 판매점들을 통해서도 고객정보가 팔려 나가고 있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인터넷 서비스 판매점 사장 진모 씨(49) 등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진 씨 등은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폐업한 다른 판매점 사장 30여 명에게 식사와 술 등을 접대하고 300만 건에 이르는 통신사 고객정보를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폐점한 중소 판매점 수는 2000곳에 달한다.

 통신 3사는 대리점·판매점을 통한 고객정보 노출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미 피라미드식 구조로 복잡해진 영업 현장의 말단까지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 측은 “지난해 정보보안 부서가 대리점 전수조사를 했지만 위탁 경영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단통법 이후 현장의 리스크가 커지면서 이면 계약 등으로 대리점을 떠넘기려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를 관행처럼 여기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