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뒤돌아본 각시는 돌이…” 각시바위의 아픔

이정연 기자

입력 2016-11-15 05:45 수정 2016-11-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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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두원면 용당리 구룡마을 어귀에는 언제 생긴지 모르는 각시바위와 서방바위(작은 사진)가 들어서 있다. 각시와 서방을 생각하는 마음에 돌로 굳어졌다는데, 각시바위는 실제로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7 구룡마을 각시바위·서방바위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부자 시아버지 밑에서 고생만 하다
큰 홍수 피해 도망가라는 스님의 말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건만
남편은 서방바위로…각시바위 전설

수천년 세월이 흐르도록 바위는 대지에 깊이 박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을 터이다.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말라는 바위의 단단한 ‘울림’이 대대손손 전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때로는 바위에 기대 염원을 담아내기도 하고, 바위의 모양 등 상징하는 의미를 보고 마음을 새기기도 한다.

전남 고흥에는 유독 바위에 얽힌 설화가 많다. 그 가운데 두원면 용당리 구룡마을에는 애틋하면서도 가슴 한 켠 시리게 하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인고의 세월을 함께한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에 스며들어 온전한 세상의 길을 안내하는 또 다른 이정표가 되고 있다.


● 마을의 전설을 품은 바위

‘용당리’라는 지명은 마을에 있는 연못에서 비롯됐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후 구룡못이 생겼다. 이 연못을 중심으로 마을의 전설이 시작된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오는 이야기지만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마을 사람들은 흘려듣지 않는다.

김점례 할머리(89)와 또래 10여명의 할머니들은 마을회관 앞 정자에 누워 “우리도 시집와서 잘 몰러, 옛날부터 전해온 얘기라고 하니까 알고만 있는 거지. 한 평생 사는 거 잘 살라는 거 아니겄어?”라며 웃는다.

할머니들이 전해들은 내용은 이렇다.

옛날 이 마을에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부자는 심술궂기로 유명했다. 갓 시집 온 며느리에 대한 구박도 심해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승이 찾아와 시주해줄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부자는 오물을 한바가지 퍼다 주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대신 천성 착한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흰 쌀을 건네주었다. 이를 몰래 지켜본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구박했고, 보다 못한 중이 며느리에게 ‘이 집은 곧 큰 홍수가 날 것이니, 동남쪽으로 도망가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권했다.

며느리는 스님이 시킨 대로 갓난아기만 데리고 집을 떠나 동남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집 근처에서 천둥벼락이 쳤고, 남편은 ‘여보 같이 가자’며 아내를 목놓아 불렀다. 남편의 소리에 뒤를 돌아본 순간, 며느리와 품에 안긴 아기는 그대로 돌로 변하고 말았다. 아내를 잊지 못한 남편도 그 자리에서 돌이 됐고, 시아버지가 있던 집은 깊은 연못이 됐다.


● 각시바위와 서방바위

그렇게 생겨난 각시바위는 구룡마을 어귀에 서 있다. 거기서 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서방바위가 있다.

특이하게도 서방바위는 한 주택 1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방바위를 옮길 수가 없고, 깰 수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집을 올렸다. 집주인 박여순(48)씨는 “이사 온 지 10년이 됐다. 추석이나 설 등 명절 때 서방바위에 술을 부어주면서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준다”고 했다.

박씨가 남편 이형구(48)씨와 함께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 이들 부부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몇몇 집의 남편들이 모두 좋지 않은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한 스님을 모시고와 집터를 봐 달라고 했다. 당시 땅과 한 몸이 된 바위를 등한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남들이 들으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거다. 그래도 두원면의 전설바위다. 그때 아내와 아기를 지켜주지 못한 남편(서방바위)이 애틋하지 않냐”고 말했다.

돌이 되어서도 수천년 세월을 함께한 부부. 품에 안고 있던 아기의 흔적인 석상은 이미 유실돼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그 안타까운 사연만 바위로 남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망부(亡夫)와 망부(亡婦)의 오랜 인연 그리고 선한 삶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긴요한 희망을 보듬고 있었다.

고흥(전남) |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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