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청정함, 건강함, 안전함 핀란드의 또 다른 美食을 맛보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입력 2016-10-27 03:00 수정 2016-11-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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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핀란드 헬싱키의 명소인 레스토랑 노카(NOKKA)는 아주 특별하게 관리하는 VIP가 있다. 바로 ‘Very Important Producers’, 주요 식재료 생산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오픈 때부터 자국 식재료만 사용해왔기 때문에 노카의 VIP는 모두 핀란드에 있다. 때마침 레스토랑은 생선 마켓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다. 25개의 생선 VIP들이 각자의 생선을 가져오고 레스토랑은 생선요리만 판매하는 식이다.

숲에서 채집한 핀란드의 야생 버섯.
 7년 만에 다시 찾은 헬싱키 식당들은 여전히 ‘메이드 인 핀란드’의 식재료로 식탁을 차렸다. 헬싱키를 벗어난 외곽은 더욱 그랬다. 헬싱키에서 불과 2∼3시간만 달리면 핀란드의 자연에 안긴 듯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들에 도착하는데 농장과 숙박시설, 작은 식당들은 하나같이 유럽에서도 가장 청정한 자연의 맛을 내놓았다. 그 땅에서 재배된 농작물과 인근 호수에서 수확한 생선, 이웃 농장의 소와 돼지고기, 아침에 짠 우유, 바로 앞 숲에서 채집한 베리와 버섯, 이웃 마을에서 온 벌꿀. 그들의 식단은 이러했다. 

지난해 핀란드에서 최고의 베드 앤 브렉퍼스트로 선정된 ‘로마모킬라’의 저녁식탁. 바앤다이닝 제공
 핀란드인 식탁에는 거의 매일 생선이 올라온다. 호수의 나라니 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공기가 가장 깨끗한 나라인 데다 철저한 수질 관리로 오염이 없다. 베리도 매일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이들의 베리는 우리가 아는 범주를 넘어 훨씬 다양하며 대부분 야생이다. 핀란드 국토의 70%가 삼림인데 어디서든 베리를 채집해서 먹어도 된다. 심지어 사유지여도 상관없다. 닭고기와 유제품도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자국 우유와 달걀은 날것으로 먹어도 될 만큼 퓨어 푸드(Pure Food)라고 자부한다.

 핀란드의 자연은 “과연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었다. 사실 미식의 중심에서 핀란드 음식이 주목을 받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핀란드는 묻고 있었다. 음식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믿을 수 있음, 안전함, 순수함, 이 단어들이 과연 ‘맛’보다 낮은 가치일까.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며 자신들만의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생산하고 실천하고 있는 핀란드를 경험하고 돌아왔다.미켈리에서의 브런치

핀란드 헬싱키의 노카 레스토랑.
 헬싱키에서 차로 3시간 남짓 달렸을까? 이곳의 바깥 풍경은 한결같았다. 숲 아니면 호수를 지나 마침 도착한 도시는 미켈리(Mikkeli). 헬싱키에서 북동부 방향이지만 여전히 핀란드 전체로는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수백 개의 호수가 서로 연결돼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이마 호에 인접해 있다.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도 호수의 도시라고나 할까.

야생 베리로 만든 웰컴 음료.
 도시라기보다 마을에 가까울 만큼 호젓한 이곳에서 번화가임이 틀림없을 사거리에 레스토랑 ‘비스트로 빌레(Bistro Vilee)’가 있었다. “인근 지역 식재료로만 요리하는 곳이에요. 100%죠.” 안내자는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핀란드가 미식의 나라였던가? 그것도 시골인데…. 크지 않은 기대감은 메뉴의 첫 요리인 그린 샐러드에서 무너졌다. 채소의 고소함이 살아 있고 소스마저 신선했다. 뒤이어 ‘체리 토마토를 넣은 프리타타’ ‘페스토를 곁들인 구운 유기농 주키니’ ‘야생 버섯 샐러드’ ‘퍼치(농어류 민물고기) 구이와 샹트렐(살구버섯) 소스’ ‘돼지고기 구이와 유기농 감자 구이, 고수 소스’ 등 디저트까지 10가지 요리가 더 나왔다. 한결같이 인근 농장에서 기른 돼지와 채소, 인근 호수에서 잡은 생선, 채집한 야생 버섯들로 만든 요리였다. 소스도 모두 직접 만든 것들로 신선함이 이를 입증했다. 가격은 28유로. 일요일 브런치를 위한 특별 메뉴라고는 하나 물가 비싼 핀란드에서 말도 안 된다. 얼마나 손이 많이 갈까. 게다가 매일 메뉴가 바뀐단다.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숲에서 야생 베리와 버섯을 채집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7년 전에 단둘이 시작했다는 레스토랑이 지금은 성수기인 여름이면 30명이 일을 한다. 원래 헬싱키 출신이라는 오너 셰프는 이외에도 베이커리, 푸드 팩토리를 운영한다. 자신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인근에도 빵과 식재료를 공급하는 셈. “앞으로는 로컬이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모든 재료를 중간 판매자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나 자연에서 바로 수급해옵니다. 감자만도 10여 개 농장과 거래해요. 생선, 소금, 고기, 유제품 등등을 따지면 수십 곳이 넘을 거예요.”

 핀란드의 자연을 맛보게 될 다음 장소가 몹시 궁금해졌다. 


인근 농장에서 키우거나 지역 내 자연에서 채집, 어획한 식재료만 사용하는 ‘비스트로 빌레’의 요리.


시간이 쉬었다 가는 곳

  ‘테르티 마노르’도 미켈리의 자연을 제대로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6세기 영주의 저택과 농장이 결합된 형태의 장원(莊園·Manor)을 개조한 이곳은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별실 같은 호텔 시설과 오가닉 삼림, 정원, 산책길, 카페, 숍, 농장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다.

 주인장 부부는 증조부가 이곳을 구입하면서 현재 3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실내에는 예전부터 내려온 러시아풍 가구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돋운다. 요리에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자급자족하는데, 농장에 없는 것들은 인근 숲에서 채집한다. 주로 야생 베리와 버섯을 따는데 이 지역은 오가닉 삼림으로 등록된 곳이다. 

 워낙 위도가 높고 청정 지역이라 웬만하면 오가닉일 것 같다. 그래도 해충은 없는지,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주인은 “추위 때문에 해충이 살아남지 못해요. 발생해도 확산되지 않고 저절로 없어지죠. 토지도 6.5pH로 약산성이어서 해충이 번식하기 어렵습니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정원에는 투숙한 손님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찾아와 점심 식사나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점심은 뷔페로 마련되는데 이날은 청어의 비린 맛이 없도록 블랙커런트로 절인 청어, 정원에서 따온 베리를 넣은 그린 샐러드, 직접 구운 빵, 주니퍼 베리 젤리, 125년 된 사워 도로 만든 크리스피 브레드, 버섯 향이 진한 포르치니 수프, 베리 스무디 등 지역의 농산물과 핀란드의 전통이 담긴 레시피로 완성된 요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사본린나에서 만난 똔뚜의 숲

 미켈리에서 북쪽으로 다시 100km 정도 차로 이동해 핀란드에서도 오페라 축제로 유명한 사본린나(Savonlinna)에 도착했다. 사본린나는 핀란드어로 ‘사보의 요새’, 스웨덴어로는 ‘새로운 요새’를 의미한다. 중세 스웨덴의 섭정 시절 요새를 건설했는데 매년 7월이면 바위섬 위에 지은 요새의 정원에서 환상적인 오페라가 펼쳐진다. 울창한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고성에서 인위적인 무대 장치나 음향 시설 없이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오페라의 감동은 이곳을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의 도시로 만들었다. 

 자작나무 숲을 한참을 달려 우리가 향한 곳은 로마모킬라(Lomamokkila)라고 하는 베드 앤 브렉퍼스트(Bed&Breakfast)다.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로마모킬라는 지난해 세계적인 여행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 사용자들이 핀란드의 ‘베스트 베드 앤드 브렉퍼스트’로 뽑은 적이 있다. 1주일 투숙 비용은 약 700∼800유로다.

 우리로 치면 시골 민박집인데, 자연스러움을 넘어 ‘평화로운 시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과 숲 사이에 터를 잡은 안락한 코티지들, 광활한 목초 위에 행복해 보이는 하일랜드 캐슬 소떼, 걸어서 10여 분이면 자작나무 숲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호수, 지금 따 먹으면 좋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 그림 같은 정적을 깨고 쏜살같이 달려온 강아지가 한 명 한 명에게 냄새 도장을 찍는다. 마침 오후 3시경. 홈 브루어링한 맥주를 마신 뒤 숲으로 베리 채집을 나섰다.

 주인장이 안내를 맡았다. 아빠를 따라 나온 두 딸 엘라(3), 안나(5)는 익숙한 일인 듯 긴소매 옷에 장화로 무장하고 손에는 소쿠리를 들고 있다. 수확시기가 끝물인 빌베리나 간간이 보이는 링곤베리, 이름 모를 버섯이 나타날 때마다 “아빠, 이건 먹어도 돼요?”하고 물으면 아빠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반복적으로 일러준다. 엘라와 안나에게 전하는 지혜는 언젠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핀란드는 아이슬란드와 함께 위도 60도 이북의 북극권에 수도와 기간산업이 존재하는 단 2개국 중 하나다. 그만큼 추운 지역이지만 핀란드는 농업 생산국에 해당한다. 여름철 풍부한 일조량에 힘입어 짧은 기간 안에 급속한 성장기를 거치면서 베리 등 야생 농작물은 생리 활성 물질이 풍부하다.

 또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청정한 물과 공기, 오가닉 토양이 풍부한 나라로 호수의 숫자만 약 20만 개에 달하며 국토의 73%가 숲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삼림의 40%가 오가닉 인증을 받았는데, 이는 전 세계 오가닉 삼림의 30%에 해당한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메인 코티지의 다이닝룸에는 칼레의 아내가 직접 차린 저녁 식탁이 풍성했다. 농장에서 키운 소로 만든 핀란드식 스튜는 마치 갈비찜마냥 큼지막한 고기들이 고소하고 진한 국물에 담겨 있었다. 여기에 핀란드 국민 생선이라 할 수 있는 무이쿠(Muikku·흰송어) 구이, 곁들이기 좋은 오이 피클, 토마토 샐러드, 야채 수프, 직접 재배한 감자와 당근 요리, 직접 구운 호밀빵, 여기에 숲에서 딴 야생 베리로 만든 음료, 인근 농장 유제품으로 만든 디저트 애플크럼블까지 모두 직접 재배하거나 인근 호수, 농장에서 수급한 재료들의 조합이다. 그래서일까, 가짓수가 적지 않은 세미 뷔페인데도 하나하나 자꾸 맛을 탐하고 싶었다. 100% 로컬이라는 이상이 현실이 된 식탁, 이것을 당연한 듯이 즐기는 핀란드인의 식탁이 갈수록 매력적이었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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