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내이름으로”… 경단녀들, 되찾은 출근의 설렘

박창규기자

입력 2016-10-17 03:00 수정 2016-10-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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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스타트 잡페어 “일하니 행복해요”]<4> 금융권 시간선택제 채용 확산
19,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서


다시 찾은 내 일 “이렇게 좋을수가…”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사무실에서 교보생명의 ‘퀸(K-Win) FP’로 선발된 새내기 재무설계사(FP)들이 밝게 웃고 있다. 교보생명은 최근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관련 FP 전원을 경력 단절 여성 중에서 선발했다(위쪽 사진). 2013년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한 IBK기업은행은 권선주 행장(아래쪽 사진 왼쪽)과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등 재취업한 직원들이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IBK기업은행 제공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사무실에선 보험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교육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보험 상품을 다룹니다. 생명보험이나 교육보험은 물론이고 실손보험, 방카쉬랑스도 모두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이에요.”

 강단에 선 박수진 지점장의 설명을 듣는 교육생들은 모두 이달 초 선발한 새내기 재무설계사(FP)다. 그렇다고 모두 사회 초년병들은 아니다. 길게는 7년여 동안 일을 쉬었던 경력 단절 여성(경단녀)들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듣는 강의에 몸이 근질거릴 만도 하지만 이들은 강사의 얘기를 하나라도 놓칠까 봐 집중하고 있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5년 만에 재취업한 장귀영 씨(36·여)도 그랬다.


○ 5년 만에 찾은 아침 출근길의 설렘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가 이렇게 어려울지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장 씨는 2004년부터 약 7년간 교보생명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첫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그는 2011년 복직을 포기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육아가 자리를 잡아가자 마음이 흔들렸다.

 “2013년 낳은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계속 회사에 다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일이 늘어갔어요. 아이들의 엄마로 불릴수록 ‘장귀영’이라는 제 이름이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고요.”

 이후 장 씨는 짬이 날 때마다 일자리박람회를 찾았다. 하지만 사무직 경력밖에 없는 전업주부를 채용하려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좌절하던 장 씨에게 교보생명의 ‘퀸(K-Win) FP’ 모집 소식은 단비였다.

 “저 같은 경단녀를 선발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요. 게다가 교보생명은 친정 같은 회사였거든요.”

 그는 곧바로 입사원서를 냈고, 이달 4일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장 씨는 “아침 출근길에서 느끼는 설렘이 좋다”며 “나 자신을 찾는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 경단녀 채용, 전 금융권으로 확산 중

 금융권의 경단녀 채용 움직임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 4∼6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를 장려하면서 나타났다.

 IBK기업은행과 신한은행이 가장 먼저 경단녀를 위한 시간선택제 직원 선발에 나섰고 이어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도 경단녀를 채용했다. 영업점 창구에서 입출금 등을 맡거나 본점 및 고객센터에서 전화상담, 사무지원 등을 담당하는 게 이들의 주업무다.

 은행은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일손 부족을 덜 수 있고 직원들은 육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시간제 일자리는 회사와 경단녀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들어 경단녀 채용은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모바일 뱅커’ 채용 공고를 내면서 금융권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단녀를 우대한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모바일 뱅커는 기존 영업점에서 하던 은행 업무를 전화나 인터넷,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하는 직군”이라며 “원서 접수 마감 결과 지원자 1200여 명 중 상당수는 임신이나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둔 금융권 경단녀였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올 1월부터 여성 특화 지점인 ‘리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보험설계사의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로 조정해 주부가 대부분인 경단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교보생명의 퀸 FP는 FP 전원을 경단녀로 채워 주목을 받았다. 이성우 교보생명 퀸 FP TF장은 “업체 간 재무설계사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충성도 높은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퀸 FP를 도입했다”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안정적인 수수료를 보장해 경단녀들의 호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 실효성 있는 경력 단절 예방책 뒤따라야

 금융권의 경단녀 채용에 우호적인 반응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잖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경단녀들이 대부분 시간선택제 일자리로서 정규직이나 준정규직(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복지 등을 제공하고 정년 보장)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되다 보니 해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실제 경단녀를 적극 채용했던 한 증권사는 올 상반기 계약 만료를 앞둔 주부 5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한은행이 올 7월 은행권 최초로 도입한 ‘스마트근무제’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집 근처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육아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의 고충을 덜어줬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워킹맘을 비롯해 주말부부, 여가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직원들의 신청이 많은 편”이라며 “특히 아침마다 아이들과 등교 또는 등원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워킹맘의 반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이도영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장은 “경력 단절자의 일자리 복귀를 위해 좀 더 안정적인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시간선택제와 전일제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임신 근로자의 경력 단절 등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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