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백지선 감독 “선수 개성을 존중하면 멋진 게임 나옵니다”

장윤정기자

입력 2016-10-17 03:00 수정 2016-10-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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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日 꺾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백지선 감독 인터뷰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백지선 감독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 강호 팀에 맞서 명승부를 펼칠 것을 약속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겨울올림픽 여자 종목의 꽃이 피겨스케이팅이라면 남자 종목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이스하키다. 선수들의 격렬한 몸싸움과 스피드 넘치는 움직임은 관중을 압도한다.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고, 입장권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아이스하키다. 좁은 링크에서 펼쳐지는 속도전, 거친 플레이가 특징인 아이스하키에서 신장과 체격 같은 ‘타고난 조건’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 때문에 한국 등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철저히 변방에 머물렀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올해 4월 열린 2016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선전을 펼치며 세계 아이스하키의 강호 16개 팀만이 참가하는 월드챔피언십에 사상 최초로 출전할 기회에 바짝 다가선 바 있다.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에 한 골 차로 패하며 출전권을 눈앞에서 아깝게 놓쳤지만 세계선수권 디비전 1A에서 34년 만에 일본을 꺾으며 아이스하키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 같은 선전의 한가운데는 백지선 감독(49)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캐나다 교포로 지미 팩(Jimmy Paek)으로도 불리는 백 감독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최초의 동양계 선수로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우승컵까지 들어올린 NHL의 신화적 존재다. 이제 그는 한국 대표팀을 진두지휘하며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10호에 실린 백 감독과의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2년 전 한국 국가대표팀에 부임했을 때, 팀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했나. 당시 세계선수권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3부 리그로 강등당한 상황이었는데 팀을 바꾸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했는가.

 “하나를 꼭 집어 잘못됐다기보다는 조직이 하키에만 집중할 수 있게 운영되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일단 라커룸에 태극기를 걸고, 모든 장비와 유니폼을 ‘각’을 잡아 정리하도록 했다. 지원 스태프도 늘렸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하면 바로 링크로 나가 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들고 싶었다.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에는 짧은 거리라도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하도록 했다. 선수들 스스로 국가대표팀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규율도 강조했다. 코트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생활이 흐트러지면 코트 안에서도 플레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어떤 전략이 주효했나.

 “1차전에서 오스트리아에 이기고 있다 2-3으로 아깝게 역전패를 당했다. 더 큰 위기는 주전선수 테스트위드가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궁여지책으로 폴란드전에서는 선수들의 조합을 모두 바꿨다. 특히 공격라인에 스위프트-신상훈-조민호 선수를 나란히 세웠다. 단 한 번도 실전에서 나란히 서지 않은 데다 3명 다 신장이 작은 편이라 예상하기 힘든 조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팀이 쉽게 점칠 수 없는 조합이기에 더 강력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스위프트(3골), 조민호(3어시스트), 신상훈 선수(2어시스트)가 맹활약을 펼쳐 폴란드를 4-1로 제압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일본전에서는 다들 저 세 명의 선수가 또다시 나란히 설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다시 한 번 선수 조합을 바꿨다. 상대방의 예상을 무너뜨리는 의외의 조합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평창올림픽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좋은 성과를 위해 외국인 귀화선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신은 이에 반대한 것으로 아는데….

 “귀화선수를 몇 명이나 둬야 하느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서 태어난 선수들을 최대한 많이 뽑고 싶다. 문제는 우리가 다른 국가 선수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귀화선수들은 우리의 플레이 수준을 빠르게 향상시키고, 더 나은 팀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세계적인 기류 역시 귀화선수를 중용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올림픽에서 대표 선수 전원을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으로 채웠고, 일본도 과거 나가노 올림픽 대표팀 당시 귀화선수를 적극 영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미국, 캐나다 대표팀이 아니라 한국 대표팀이다. 한국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 그들을 키워야 하고 올림픽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팀에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는지, 또 동시에 한국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고민하고 있다.”


 ―강압적인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라고 알려졌는데, 코칭 스타일이 궁금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리더십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선수들을 공평하게 대하려고 하지, 똑같이 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선수의 성격과 특성이 저마다 다르다. 좀 더 혹독하게 다그치고 훈련을 시켜야 움직이는 선수가 있고 칭찬을 하며 부드럽게 지도하는 것이 통하는 스타일이 있다. 각각의 선수에게 다른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눈다.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선수들에게 ‘오늘 기분은 어때’, ‘요새 가족들하고 사이는 어때’, ‘여자친구는 잘 만나고 있나’,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등 사적인 질문을 수시로 하는 편이다. 그런 대화를 통해 그 선수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다가가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존중(respect)’이다. 팀 멤버들 서로에 대한 존중, 국가대표팀에 대한 존중 말이다. 사실 팀원들의 사이가 항상 가깝고 좋을 수는 없다. 23명의 팀 구성원이 다 제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함께 팀으로 나서면 코치나 선수들 모두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리더라면 이렇게 상호간의 존중을 이끌어내는 데 힘써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평창에서 엄청난 강팀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면 하키 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박세리 선수의 쾌거 이후에 여자 골프 붐이 일어났듯 말이다. 평창에서 정말 멋진 게임을 펼쳐 그런 성공신화를 만들고 싶다. 붐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좋은 체격과 우수한 운동신경을 가진 어린이들이 하키를 시작할 것이고 하키 링크 역시 늘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 코치와 하키 팀이 늘어나고 하키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면 아마 우리 국가대표팀도 더 이상 외국인 귀화선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 세대들이 열정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또 코치로서 같은 열정을 불태우며 어린 선수를 육성해야 이뤄낼 수 있는 공동의 목표이자 꿈이 될 것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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