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주관측 큰소리친 항우연… 위성부품 90%이상 ‘함량미달’

차길호기자 , 최지연 기자

입력 2016-10-10 03:00 수정 2016-10-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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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 위성’ 국민 속인 미래부]국가 우주연구 독점… 견제 안받아
실패 책임, 외부-예산탓 떠넘겨도 정치권 등 전문지식 없어 감사 못해
달 탐사 사업도 ‘발사쇼’ 그칠 우려… 전문가 “예산-사업 감시 조직 필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개발을 총괄한 과학기술위성 3호의 ‘미션 실패’는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

 9일 항우연 관계자에 따르면 위성 전체 부품 가운데 우주로 쏘아 올리는 목적으로 제작된 ‘우주급’은 5% 수준에 불과했다. 부품의 90% 이상은 우주급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는 ‘군사급’이나 ‘산업급’이 쓰였다. 1년 반 만에 수명을 다한 검출기 냉각기도 다목적 적외선 영상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지만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군사급 부품이다. 우주 개발 분야 출신의 한 민간 사업자는 “우주 사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항우연의 폐쇄적 사업 방식 때문에 성과 부풀리기가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과학기술위성 3호는 국내 최초로 우주 관측을 위해 만들어진 위성이다. 과학기술위성은 지구 관측이나 통신을 위한 실용 위성인 ‘아리랑호’나 ‘무궁화호’와 달리 우주과학 연구를 위한 정보 수집이 목적이다. 과학기술위성 3호는 다목적 적외선 영상 시스템의 우주 관측 카메라를 통해 우리 은하 등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한 영상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 책임 떠넘기는 항우연

 항우연 측은 “개발의 상당 부분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맡았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실제 개발 사업에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공주대, 충남대, 한국천문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항우연이 주도한 설계 과정에서의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방 사립대 공대의 한 교수는 “위성을 설계할 때 부품 내구성에 대해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항우연은 2007년 개발에 참여한 기관들과 공동 설계팀을 구성해 2년간 설계를 주도했다.

 항우연 측은 “우주급 부품을 쓰기엔 예산이 부족했다”고도 설명했다. 이 사업에는 예산 278억여 원이 투입됐다. 일각에서는 항우연이 사업을 마지막까지 성공시킬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고 있다. 위성 시스템 분야의 권위자인 한 교수는 “항우연 내에는 사업이 성공할 만한 예산과 기간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느 정도만 하면 예산이 나오고 발사 정도는 성공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는 항우연이 우주 사업을 독점적으로 맡다 보니 외부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우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후 국책과제 참여도 배제하는 등 진짜 전문가들을 따돌리는 ‘우주 마피아’ 문화가 문제”라는 얘기까지도 나돌고 있다.

 항우연 내부에서는 “항우연 고위 인사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항우연의 한 연구원은 “우리의 기술력과 일정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보직자들이 현장 의견을 무시한 채 사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 개발 분야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미래창조과학부 등에서 사업 기간 단축을 요구하면 현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 기간을 줄여 버린다는 것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사업 기간을 줄인 다음 사업 진행이 어려워지면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포장하는 것이 항우연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 역시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우주 개발 사업 추진을 합리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항우연의 나로호(KSLV-Ⅰ) 개발 문제와 방만 운영에 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감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정치권은 2조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한국형발사체(KSLV-Ⅱ) 사업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이 사업은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2010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1조5449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항우연은 2년 뒤인 2011년 사업 기간을 2년 5개월 연장시킨 다음 2년 뒤 다시 사업 기간을 1년여 단축하고도 예산 4123억 원을 증액받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한국형 발사체 사업 기간 단축은 항우연 연구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위층이 직접 판단한 결정이다.


○ 투명한 집행과 외부 견제 이뤄져야

 우주 개발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투입되는 정부 예산도 급증하고 있다. 2011년 2000억 원대에 머물던 우주 개발 예산은 올해 3배가 넘는 7464억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아무리 예산을 퍼부어도 우주 개발이 이렇게 독점적으로 추진되면 우주 강국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강한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2013년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한 달 탐사 사업 역시 발사 대행 수준으로 전락한 나로호 사업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나로호 사업은 러시아와의 우주기술협정 체결 당시만 해도 기술 확보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2년 뒤 러시아가 기술보호협정을 내세우면서 기술 접근이 차단됐다. 항우연은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연말 달 궤도 국제협력 협약 체결을 준비 중인 가운데 달 탐사선 탑재체 공간 중 일부를 NASA에 제공하는 대신 NASA는 기술 검증을 하고 자문에 응하기로 했다. 항우연 내부에서는 “협약은 양해각서 수준에 그치고 실제 노하우를 전달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항우연 외부의 견제와 협력이 우주 사업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항우연의 사업 추진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선 독립적인 전문가 그룹의 감시와 민간 기업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우연의 한 연구원은 “정부의 우주 기술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길호 kilo@donga.com·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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