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농구 잡은 배구… 비결은 외국인 오빠-공정한 판정

황규인 기자

입력 2016-10-10 03:00 수정 2016-10-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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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서 주인공으로 떠오른 한국 프로배구

 “미안하다. 농구대잔치는 이제 추억일 뿐이다. 이제는 배구가 대세다.”

 2013년 방영된 tvN 연속극 ‘응답하라 1994’의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분)이 2016년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면 TV 앞에서 리모컨을 돌리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 연속극에서 성나정은 연세대 농구부 이상민(44·현 프로농구 삼성 감독)에게 열광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당시 겨울에 열리는 최고 인기 스포츠는 농구였고, 배구는 들러리 신세에 가까웠다.

 이제는 반대다. 물론 아직 프로배구가 확실하게 역전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하다. 하지만 프로농구가 ‘선발자 우위’ 효과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후발 주자인 프로배구는 어떻게 프로농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10호에 실린 ‘들러리에서 주인공으로 떠오른 한국 배구’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 시청률과 채널 확보의 힘

 2005년 첫발을 내디딘 프로배구가 11년 동안 급성장한 비결에 대해 김대진 한국배구연맹(KOVO) 홍보마케팅팀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농구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농구에 앞서는 건 사실상 TV 시청률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시청률 정도’라고 표현하기엔 차이가 너무 크다. 2015∼2016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 평균 TV 시청률은 1.07%(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로 남자 프로농구(0.28%)의 3.8배 수준이었다. 프로배구 여자부 시청률(0.70%)이 오히려 남자 프로농구 시청률보다 높다. 프로배구보다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농구 팬 중에는 TV 시청률에 잡히지 않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시청자가 많다’고 항변한다.

 두 종목 모두 온라인(모바일) 중계를 맡고 있는 금현창 네이버 스포츠&게임 셀(cell) 이사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합친 프로농구 경기 평균 접속자(UV) 수는 약 8만5000명 정도고 프로배구는 약 7만5000만 명 정도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케이블TV에서 시청률 0.8%는 약 28만8000명 정도가 더 본다는 뜻이다. 프로농구 온라인 시청자가 더 많은 건 맞지만 시청률 차이를 극복할 정도는 못 된다.

 KOVO는 지난해 12월 KBSN과 5년간 총액 200억 원(연간 40억 원)에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KBL도 지난 시즌이 끝난 뒤 MBC스포츠플러스와 5년간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비공개지만 업계에선 총액 150억 원(연평균 30억 원) 정도에 계약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구가 배구보다 중계권료가 떨어지는 건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4’ 속 성나정(1994학번)과 같은 또래인 40∼44세 여성도 농구를 등졌다. 이 또래 여성도 배구(0.068%)를 농구(0.064%)보다 많이 본다.

 김 팀장은 “배구는 프로 출범 때부터 KBSN(당시 KBS스카이)이 계속 주관 방송사를 맡아 왔는데 이것이 V리그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며 “중계채널이 안정적이었고 경기 시간도 고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 시간에 KBSN을 켜면 무조건 배구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KBSN에 따르면 2014년에는 프로배구 시청률(1.03%)이 프로야구 시청률(0.90%)보다 높았다. KBSN 관계자는 “주로 여름에 열리는 국가대표팀 일정 등을 감안하면 배구는 앞으로 계절을 타지 않는 콘텐츠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 ‘아웃소싱’의 힘

 농구대잔치 시절의 ‘오빠부대’가 농구에 등을 돌리게 만든 제일 큰 이유는 외국인 선수였다. 오빠부대에게 외국인 선수는 ‘외국인’이지 ‘선수 오빠’가 아니었다.

 배구는 반대였다. 연도별 프로배구 남자부 시청률을 살펴보면 외국인 선수 점유율이 늘어나면 시청률이 오르고 줄면 내려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웃소싱’한 외인부대에 대한 소비자 평가가 호의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던 아가메즈(31·콜롬비아)는 전성기 시절, 세계 3대 공격수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를 데리고도 세계 무대에서는 무명인 외국인 선수 레오(26·쿠바)가 버틴 삼성화재를 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오는 2012∼2013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팀을 두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프로배구는 세계 최고 선수들이 찾는 무대였고 그들을 물리치는 또 다른 선수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 라인도 생겼다. 프로농구는 일단 NBA급 선수를 영입하는 일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B급 선수들에게도 밀리는 ‘오빠’를 지켜보는 일도 곤혹스러웠다.


○ 공정성의 힘

 편파 판정은 TV 채널을 돌아가게 만든다. 스포츠를 통해 관중이 기대하는 바의 본질이 페어플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정성은 스포츠란 ‘업(業)’의 본질에 가깝다.

 프로배구는 2007∼2008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했다. 전 세계 배구 리그 중 최초였다. 이 제도 도입에 관여한 김건태 전 KOVO 심판위원장(당시 FIVB 국제 심판)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심과 부심, 선심을 베스트로 꾸려도 목측(目測)으로 100% 정확한 판정을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 방송사가 배구 경기를 두세 번씩 재방송하다 보니 오심이 한 번 나오면 그 여파가 너무 오래갔다. 그래서 카메라의 힘을 빌리자고 한 것이다.”

 프로농구는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비디오 판독을 채택하고 나서야 2011년, 같은 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KBL 홈페이지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찾아보는 건 현재까지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구가 인기가 더 많다는 건 어디까지나 ‘프로 리그’ 이야기다. 실제 종목 인기만 따져 보면 여전히 농구가 배구보다 우위다. 공원 어디서든 농구 골대는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배구 네트는 일부러 찾아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팬들이 쓰는 돈도 농구가 더 많다. 프로농구 팬들은 1년에 경기장을 평균 7.7번 찾아 32만9594원을 쓴다. 프로야구(34만494원)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반면 1년에 평균 6.6번 경기장을 찾는 프로배구 팬들이 1년에 쓰는 돈은 20만2339원이 전부다.

 김 팀장은 “앞으로 머천다이저(MD)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생활밀착형 시장을 확대해 갈 것”이라며 “지금껏 산업을 만드는 데 애썼다면 앞으로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대로 되면 성나정이 손에 든 리모컨 버튼을 다시 농구가 나오는 채널 쪽으로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프로농구라고 다시 성공기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세상에 ‘첫사랑’보다 좋은 마케팅 아이템도 없기 때문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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