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홍기택 사태’ 겪고도 기업은행장에 현기환 내정설이라니

동아일보

입력 2016-10-05 00:00 수정 2016-10-0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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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우(右)병우 좌(左)기환’으로 불릴 만큼 실세로 꼽히던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IBK기업은행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이다.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기환 내정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언론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청와대 들으라는듯 말했다. 하지만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차관급 인사 등을 들러리로 세워 복수의 후보군을 만든 뒤 단수 후보를 청와대에 추천하고 대통령이 현 전 수석을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 전 수석은 주택은행 인사부와 노조위원장, 한국노총 본부장을 거쳐 2004년 부산시장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뒤 18대 의원을 지냈다. 금융권 경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전공이나 이력을 볼 때 금융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는 4·13총선에서 청와대 공천 개입으로 새누리당이 패배한 데 대해 사실상 문책 경질된 인사다. 그런데도 ‘금의환향’할 경우 노조운동하다 정치권을 거치면 은행장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에 충분하다.

 임명권자가 ‘청피아’를 서민금융을 책임지는 국책은행장으로 내려보낸다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서민금융 정책까지 청와대 뜻대로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나 다를 바 없다. ‘청와대 낙하산’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재임 시절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천문학적 부실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 뒤다. 최근 한국거래소 정찬우 이사장에 이어 또 낙하산을 금융권에 보낸다는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할 판이다.

 청와대가 현 전 수석을 기업은행장에 기어코 임명한다면 금융권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생산성만큼 임금을 책정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근로관계를 정착하자는 정부의 명분과 논리는 낙하산 인사 앞에 모조리 무너지고 만다. 내년 초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 공공기관장 9곳에 대해 이런 식의 인사를 이어간다면 금융 개혁 구호를 금융 개악(改惡)으로 바꾸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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