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임종게를 쓰는 삶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6-09-29 03:00 수정 2016-11-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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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콧구멍이 없는 소가 된다는 말을 듣고/갑자기 삼천세계가 다 내 집임을 알았다.’ 이 땅의 선불교를 중흥한 경허 스님(1849∼1912)이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오도송(悟道頌)이다. 딱히 어려운 말이 없는데 난해하게 다가온다. 알 듯 말 듯한 선문답처럼 논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오묘한 철학적 사유를 함축하고 있어서다.

 ▷불교에는 도를 깨쳤을 때의 오도송과 함께 세상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임종게의 전통이 있다. 열반송이라고도 하는데 스님이 직접 글로 써서 남기거나 제자가 받아 적기도 한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입적 직전 남긴 임종게는 한국 사회에 널리 회자됐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전북 김제 금산사 조실인 월주 스님(81)이 최근 오도송과 임종게 남발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수행자가 한평생 올곧게 정진했으면 그것으로 훌륭한 삶인데 어설프게 수행한 사람이 오도송을 내거나, 임종게 없이 타계한 스님의 제자들이 억지로 임종게를 만들어 발표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월주 스님은 “1970년대 청담 스님이 입적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임종게를 내자고 했지만 청담 스님 살아오신 것 자체가 임종게인데 별도의 임종게가 왜 필요하냐며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어설픈 오도송, 임종게를 내선 안 된다. 나의 임종게도 내가 살아온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행자에 대한 지나친 과장과 미화를 경계하려는 뜻일 터다.

 ▷법정 스님도 과거 같은 맥락의 얘기를 한 적 있다. “한 스님은 ‘임종게를 남겨 달라’는 제자들을 꾸짖으며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말이 곧 임종게’라고 했다. 어떤 말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를 봐야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내가 남길 임종게는 바로 ‘나 자신이 살아온 삶’이란 깨우침의 죽비 소리. 그 속에 묵직한 화두가 담겨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임종게를 쓰고 있는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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