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다/장명희]300년 전 너와집, 미래주택의 원형이 된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입력 2016-09-27 03:00 수정 2016-11-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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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 신리에 있는 너와집. 산속 화전민들이 살던 집으로, 폭설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다른 한옥과 달리 한 지붕 아래 모든 공간이 모여 있는 점이 특징이다. 원 안은 이 너와집의 평면도. 장명희 원장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next 21’은 미래 주거를 준비하기 위한 실험주택이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 가스공급 기업인 ‘오사카 가스’가 지었고, 오사카(大阪)에 있다. 피할 수 없는 과제인 환경의 보전과 공생, 에너지 절약, 고령화 그리고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해법 찾기가 목표다.

 설계건축위원회를 구성하여 치밀한 기획과 관리시스템하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시한 장기 프로젝트로 전 세계 건축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가변형 공간, 생태정원, 에너지 절감, 쓰레기 자체 정화 시스템 등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은 넓고 깊었다. 그중 내 관심을 끈 것은,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18가지 주제로 설정하고 집합주거 형태로 제안한 평면이었다.

 예를 들어 ‘독립적인 가족의 주거’에서는 각 방마다 외부 가로로 통하는 출입문을 냈고, ‘재택근무자 주거’에서는 벽체로 업무공간과 주거공간을 구분했으며, ‘3세대 주거’를 위해 출입문을 분리해 별도 공간을 구성했다. 거기에 실내작업장을 둔 ‘가내 수공예가의 집’까지. 이 평면들은 내게 낯설지 않았다. 강원 삼척시 신리에 있는 너와집이 떠올랐다.

 신리 너와집은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이 서쪽으로 살짝 꺾어지는 어름에 자리 잡은 산간지역의 화전민 주택이다. 나무가 흔한 지역이니 목재를 세로로 쪼갠 너와로 지붕을 이었다. 동네에서 오래 목수 일을 하신 분의 말씀으로는, 목재의 나이테나 집을 지은 기법으로 보아 적어도 300년은 되었으리라고 한다.

 예전에는 사람이나 가축이 호랑이에게 화를 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는 첩첩산중이다. 이런 곳에 폭설과 추위를 대비한 집이 지어졌을 터이다. 그래서 안채며 사랑채가 각기 독립돼 있는 농촌지역의 집들과 달리, 모든 공간은 한 지붕을 이고 모여 있다. 그러면서도 구분은 명확하여 사랑방, 외양간이 사랑채, 안방과 샛방, 부엌, 봉당이 안채다. 칸막이벽이 공간 구분과 내외담 역할을 겸한다. 가난한 화전민의 삶이 어찌 예의범절을 제대로 갖추고 살았으랴 싶지만 일가친척이라도 남녀 간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는 연세 높으신 동네 어른의 회고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다. 사랑방을 마주한 외양간은 2층 구조다. 아래는 외양간, 위층에 연장과 여물을 보관한다. 사랑방에서 바로 외부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문 열면 쪽마루다. 날씨 좋을 때는 동네 남자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던 곳이니 요즘 말로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 집에는 방마다 외부로 나가는 문이 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 봉당을 매개 공간으로 하여 대청·안방·샛방·부엌·안채 출입문이 둘러 있다. 봉당은 농촌주택의 안마당에 해당하는 실내 작업공간이다. 부엌과 봉당 사이 벽에는 관솔불 피우도록 돌판을 놓은 두둥불이 있다. 양쪽을 밝히니 긴 겨울밤에도 봉당과 부엌에서 작업하기에 좋았겠다. 안방에는 벽난로처럼 코굴이 있어 난방도 되고 조명도 된다. 변소가 남녀 별도인 것이 재미있다. 안채에서 문 열면 바로 여자용, 사랑채에서 나가면 바로 남자용에 닿는 위치다.

 신리 너와집 평면은 오늘의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 그 닫힌 공간에서 300년 전의 화전민은 가족의 독립적 출입과 공간의 구분 그리고 실내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해법은 오늘날 미래 주거를 위한 실험주택이 구성한 공간과 놀랍도록 같다.

 허름한 집에서 뭐 볼 것 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민초들의 집에는 살림살이에 필요한 원초적 욕구가 있고, 그 해결 방식은 ‘집의 본질’에 충실하다. 신리 너와집뿐이겠는가. 다른 집에서는 또 다른 필요와 그 해법을 본다. 찾아서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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